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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빌리 그레이엄이 남긴 신앙의 유산

945등록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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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선교지 소식을 전해 드리는 월드리포트입니다.
오늘은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지난 21일에 소천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례 예배가 드려지는 날인데요. 월드리포트에서도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추모하며 그의 믿음의 여정을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복음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도전을 안겨주고 변화을 이끌어 내며 사회에도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지난 1953년, 미국이 인종차별로 혼란에 빠져있을 당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인종 차별을 끝내기 위해 싸웠습니다.

[녹취] 빌리 그레이엄 목사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실 때, 겉모습을 보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신다고 말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밤마다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말씀을 전할 때였습니다. 당시 집회에는 다수의 백인과 소수의 흑인 성도들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레이엄 목사는 동료인 하워드 존스 목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존스 목사는 더 많은 흑인들을 만나기 원한다면 뉴욕의 길거리에서 설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인터뷰] 하워드 존스 목사
“그가 말했죠. ‘나는 이제 인종차별 하는 사람에게 설교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하고 싶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저는 흑인들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들이 있는 곳에 가자고 했어요. 그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저는 할렘으로 가라고 대답했습니다.”

세일럼 감리 교회의 수천 명의 성도 앞에서 설교하던 그레이엄 목사는 대화가 오고 간 바로 다음 주에 브루클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뉴욕의 크리스천들이 인종을 넘어서 하나가 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당시 유명가수인 에델 워터스가 이 집회에 참석해 그리스도께 삶을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레이엄 목사는 친구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집회에 초청했습니다.

[녹취] 마틴 루터 킹 목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위대한 설교자의 역동적인 설교를 통해 이 도시에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계속해서 축복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시옵소서. 오늘 밤 그의 설교를 들을 때, 우리의 마음과 영을 열어서 신령한 은혜를 입기를 원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행적을 두고 백인들은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종차별을 없애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하워드 존스 목사
“ 일부 백인들은 왜 이 사람들과 노닥거리는지 알고 싶어 했어요. 인종 통합을 하겠다면 후원하지 않을 거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돈을 주지 않겠다고요. 온갖 방법으로 그를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상관없다고, 이 결정을 지키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시민 평등권 운동에 대해 충분히 발언하지 않는다며 흑인 공동체에 관심이 없다고도 비난했는데요. 이에 그레이엄 목사는 킹 목사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녹취] 빌리 그레이엄 목사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남부 지역에 머물면서 인종 통합 집회를 열라고 했어요. 자신이 거리에 있을 거라면서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나는 거리에 머물게 될 거고, 거리에서 살해당할 수 있겠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같습니다.’”

이 때문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아칸소에서 시작해 앨라배마까지 다니며 집회를 열었습니다.

[녹취] 빌 클린턴 / 전 미국대통령
“폭동 직전의 아칸소주의 지역마다 차례차례 다니며 풋볼 경기장에 수많은 흑인과 백인 크리스천을 불러모았습니다. 그가 메시지 끝에 콜링을 할 때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팔짱을 끼고 나와서 눈물 흘렸습니다. 옛 남부시대를 끝내는 서막이었습니다. 그때를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1973년에는 남아프리카에서 통합 집회를 열었습니다.

[녹취] 빌리 그레이엄 목사
“사람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또 정치 지도자들과 가까이 지내며 인종 평등을 촉구했고 결국 빌리 그레이엄의 노력은 사랑과 연합이라는 유산으로 남겨졌습니다.

*.....*.....*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이런 여정은 결코 홀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에게는 60년간 곁을 지켰던 아내 루스 벨 그레이엄이 있었습니다.

루스 벨 그레이엄은 의료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중국에서 자랐습니다. 루스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서약했지만 하나님께서 서서히 그 마음을 열리게 했고, 휘튼 칼리지에서 그레이엄을 만났을 때, 그가 자신의 짝임을 알았습니다.

[인터뷰] 루스 벨 그레이엄
“기억나는 건 그날 집에 돌아가서 기도한 거예요. ‘주님, 제가 남은 인생을 그 사람과 함께 보내게 해주신다면 위대한 특권으로 여기겠습니다.’ 다행히 제가 무슨 기도를 하는지 몰랐어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았다면 그런 기도를 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1943년 8월, 루스는 빌리와 결혼했습니다. 6년쯤 지난 후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사역이 시작됐고 그들의 삶은 이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또 프랭클린, 루스, 앤, 지지 그리고 네드가 태어났습니다. 루스는 다섯 아이를 양육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남편인 빌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리에 나가 있어 아이들을 홀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인터뷰]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
“어머니는 항상 특별했어요.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시간이 많았고 어머니께서 우리를 키웠습니다.”

[인터뷰] 루스 벨 그레이엄
“결혼은 헌신입니다. 사랑은 그저 감정이 아니에요. 사랑은 실천입니다.”

결혼 생활가운데 힘든 일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열렬히 헌신했고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실하게 서로의 곁을 지켰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사역을 시작했을 때, 부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했던 한가지 약속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아내가 아닌 여성과 단둘이 있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루스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녀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전 세계를 돌며 자주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집에서는 재치있고 밝은 아내이자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또 그림과 글쓰기에 재능을 보여 책과 기사 등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녹취] 빌리 그레이엄 목사
“아내인 루스가 몹시 그립습니다. 그녀가 6개월째 누워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화장실을 사이에 둔 방 두 개에서 지냈습니다. 항상 열려있는 그녀의 방문을 지나 그녀를 보면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일들이 기억납니다.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며 내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말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말해주고 싶어요.”

[인터뷰] 루스 벨 그레이엄
“지금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은 잘못됐습니다. 우리는 본향으로 떠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생각하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는 거예요. 나의 자녀가 돌아온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가 돌아올 때마다 얼마나 큰 기쁨이 있을지요.”

그리고 이제 그들은 함께 하겠죠. 마지막으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보내드립니다.

[녹취] 빌리 그레이엄 목사
“하나님을 부르면, 용서하실 겁니다. 회개하면 용서하십니다. 그리스도께 돌아와 오직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으면,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당신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죄를 지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단 하나의 죄도 짓지 않은 것처럼 보시는 겁니다. 성경에서는 당신의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

지금까지 CBN과 함께 하는 월드리포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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