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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월드리포트

204등록 201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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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선교지 소식을 전해 드리는 월드리포트입니다.
오늘은 평범한 가죽 가방 회사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람을 살리는 가죽 가방 회사가 된
텍사스의 한 회사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새들백 레더(Saddleback Leather)의 데이브 먼슨 대표가 처음으로 가방을 만든 건 멕시코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그저 오랫동안 들 수 있는 가죽 가방을 원했습니다.

[인터뷰] 데이브 먼슨 / 새들백 레더
"저는 멕시코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교사였습니다. 이 가방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때 생각났어요. 인디애나 존스가 들고 다니던 것 같은 가방을 원해서 찾아 다녔지만 발견하지 못했죠. 하지만 가방 만드는 사람을 찾아내 스케치를 해주고, 이런 가방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지퍼 없이 통가죽으로요. 그 사람이 가방을 만들었고, 저는 이 가방을 항상 들고 다녔어요. 1년간 영어 교사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물어봤어요. 그런 가방은 어디서 살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나오거나 거리를 걷다가 저에게 와서 어깨를 톡톡 치며 물어봤습니다. 그런 가방은 어디에서 사느냐고요. 그래서 멕시코로 돌아갔어요. 가방을 좀 더 만들기 위해서요. 가방을 가져와서 저의 오래된 차 뒤에서 팔았습니다. 기르던 개를 뒷문에 앉혀놓았죠. 나이 든 검은 레브라도 리트리버였어요. 가방을 걸어놓고 창문에 '진짜 멋있는 가방 팔아요'라고 썼죠."

자동차 뒤에서 시작한 가방 판매는 8년이 지나
2백여 명의 직원을 둔 사업체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성장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합니다.

[인터뷰] 제인 / 디자이너
"제가 이곳에 왔을 때 저를 알아봐 주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더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어요."

데이브 먼슨 대표는 회사 내에 보육 시설을 운영하는 등
고용인들의 복지에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각별히 살핍니다.
또 성경 모임이나 예배 장소로
회사 식당을 이용하도록 합니다.

[인터뷰] 데이브 먼슨 / 새들백 레더
"저의 마음은 항상 사람들에게 향해 있습니다. 저는 전임으로 사역하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다가가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들 또한 동일한 것을 받길 원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요."

[인터뷰] 수제트 먼슨 / 새들백 레더
"저는 10남매 중 막내였어요. 부모님은 항상 집에 노숙자들을 들이셨죠. 집에 돌아오면 모르는 사람이 와서 저녁 식사를 같이했어요. 저는 그런 식으로 자랐습니다. 저는 그게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놀랍게도 지금은 그 일을 더 광범위하게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신 거로 생각해요. 우리에게는 큰 만족감을 주는 일입니다."

또 먼슨 부부는 직원 가족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며
직원 자녀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운영합니다.

학교에서는 부부가 르완다에서 입양한
14 명의 아이 중 하나인
딕슨 먼슨이 선생으로 일합니다.

[인터뷰] 데이브 먼슨 / 새들백 레더
"가끔 실수로 회사를 우리 교회라고 불러요. 저는 이들이 가족처럼 느껴지고 그들을 돌보라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거로 생각해요."

데이브 먼슨 대표는 가방을 처음 만들었을 당시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며
하나님께서 구한 것 이상으로
응답해주셨다고 고백했는데요.
그 풍성한 사랑의 능력이 계속해서 흘러가기를 바랍니다.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샘 칠더스 선교사는 1998년에 그 결정에 맞닥뜨렸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지난 2012년 미국에서 영화로 개봉되기도 했는데요.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는 샘 칠더스 선교사를 연결해 당시의 부르심과 지금까지 이어온 사역을 들어봅니다.

[인터뷰] 샘 칠더스 / 아프리카 선교사
"교회에 간 지 이틀째 되는 날, 주님께 저의 삶을 드렸고,
단상에 있던 설교자가 저를 향해 예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화가 나기 시작했죠. 정말 화가 났어요.
이 사람이 저에게 아프리카로 가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저는 아프리카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백인인데 왜 아프리카에 가야 하느냐고 생각했죠. 그러더니 제가 전쟁터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죠. 저는 몹시 화가 났어요. 정말 화가 나서 저 설교자를 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교회 밖으로 나갔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할 수 없으니까요. 밖으로 나가서 설교자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를 때리려고 했어요.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그에게 이렇게 말했죠. '나에게 아프리카로 가라고 말하지 말아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랬더니 그가 저를 바라보고 웃으면서 두고 보자고 얘기했습니다.
그때가 1992년 6월이었습니다. 그리고 1998년 가을, 저는 아프리카 수단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풀타임 선교사입니다. 저는 아프리카에서 삽니다. 22년째 살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선교지에 가지 않을 이유가 충분했었습니다. 건설 회사를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었습니다. 집 17채와 가게 8개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8개의 가게가 있었어요. 모든 것을 다 가진 인생이었습니다. 저의 인생은 세심히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계획이 있었어요. 50세가 되면 은퇴해서 쉬려고 했죠.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선교지로 부르셨습니다. 저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신 거죠. 저의 꿈은 더 이상 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간 일어난 일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 부르심이 저의 꿈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미국에 모터사이클 가게를 하나 갖고 있어요. 저는 커스텀 모터사이클을 만드는데 전 세계에서 고객이 와요. 아름다운 건물에 가게를 갖고 있죠. 사람들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왜 제가 아프리카에 사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직원들이 항상 이렇게 말해요. 당신은 그가 만난 얼굴들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요.
저의 일을 사랑합니다. 아이들을 구출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사역이 성장해서 하나였던 고아원이 7개가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루에 만2천 명을 먹이고, 7개의 학교를 세웠습니다. 지금 8번째 학교를 건축 중입니다. 지금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CBN과 함께 하는 월드리포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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