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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노숙인에서 달콤한 양봉가로!

582등록 201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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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커멘트▶
‘노숙인’이라는 단어에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떠올리시나요?

경기도의 어느 마을과 노숙인 자활쉼터가 서로 협력해
노숙인에게 드리워졌던 선입견을 깨고
그들의 재기를 돕고 있습니다.

길거리를 전전하다 달콤한 양봉가가 된
쉼터 입소자 김장수 씨 이야길 통해 알아봤습니다.
이민석 기잡니다.

◀리포트▶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운 날씨에
김장수 씨는 웃옷을 껴입습니다.

가뭄이 계속되면서
꽃에서 꿀 모으기가 힘들어진 벌들이
전에 없이 사나워졌기 때문입니다.

김 씨의 양봉 생활은
노숙인 자활센터인 양평쉼터에 입소하면서 시작했습니다.

폭행죄로 17년 가까이 복역하고 출소한 뒤,
길거리를 전전하다 쉼터에 입소했을 당시 김 씨의 나이는 60세.

적지 않은 나이에 재활을 꿈꿀 수 있었던 건
노숙인을 향한 쉼터의 환대와 감옥서 읽었던 성경 덕분입니다.

[인터뷰 : 김장수 (63) (가명) / 양평쉼터
조금도 내색을, 여기서는 누가 노숙을 했던, 뭐 어떻게 왔던 내색을 안 하더라고요.
(말씀을) 들으면 한 번씩 가슴에 와 닿는 게 있더라고요. 찌릿한 게, 뜻은 모르겠지만.
“아, 이 말씀이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것과 비슷하구나.”
... 그걸 다시 한 번 믿고 싶고...]

오랜 조직폭력배 생활과 옥살이 끝에
말씀을 되새기며 재기에 애쓰는 김 씨가 양봉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마을 주민과 쉼터 직원들은 적극 도왔습니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양봉 기술을 꼼꼼히 전수받은 덕에
지금은 벌통 15개를 능숙하게 다루는 양봉 전문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쉼터장인 방형주 이사장은
마을 주민들의 손길이 쉼터에 닿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혐오시설이라며 뭇매를 맞으면서도
마을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입소자들이 스스로 청소, 정비 등으로 섬기다 보니,
여행도 같이 갈 만큼 친근해질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과 함께하는 직업훈련,
마을 내 일자리 매칭도 같은 맥락에서 활성화 중입니다.

[인터뷰 : 방형주 이사장 / 양평쉼터
선생님들이 가셔서 주차관리도 해주시고, 다른 관리도 다 해주시고. 서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 거예요. 그러다가 마을에서 우리 아저씨들(입소자)에게 도움 될 게 없냐고 그래가지고, 지금은 컴퓨터 교육도 시켜주고, 이력서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저희하고 사진촬영하러 다니고 이거 전시회까지 하기로...]

방 이사장은 이 같은 선례가
마냥 쉽고 흔하지만은 않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합니다.

노숙인은 더럽고 악하다는 시선이 만연해,
가뜩이나 얼어붙은 고용시장 속에서 이들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 : 방형주 이사장 / 양평쉼터
진짜 다시 마음잡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거든요. 이 부분을 많이 인지해주셔야 하는데 취업하려고 가면 “어, 너 노숙인이네.” 취업했다가도 보면 “네가 노숙인이니까 그래.” 이런 말을 하니까 아저씨들이 일을 하다가도 그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

노숙인에서 달콤한 양봉가가 되기까지
비록 멀리 돌아왔지만
편견을 뚫고 꿋꿋하게 이루어가는
김장수 씨의 꿈에
쉼터와 마을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CGN투데이 이민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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