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평생 미혼모들을 사랑으로 품어온 한국 최초 미혼모자 보호시설 ‘애란원’의 설립자 반애란 여사의 추모예배 현장을 전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반 여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25년 동안 미혼모를 위해 헌신한 애란원 한상순 전 원장과 애란원을 통해 새 삶을 찾게 된 사랑의 열매, 이경희 선교사를 만나봤습니다.
이주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미혼모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대비책은 미비합니다.
미혼모들이 사회적 편견과 더불어 경제적 빈곤에 처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어온 한국 최초의 미혼모자 보호시설 ‘애란원’은 매 년, 미혼모 5,6백 여 명을 지원해 왔습니다.
미혼모가 자립하고 정착해 사회와 통합될 수 있도록 애란원과 애란 세움터, 애란 모자의 집 등 여러 부설 기관들을 연계하는 원스톱 지원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미혼모의 대모’로 불리는 한상순 전 원장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한 전 원장이 25년간 돌본 미혼모들만 6천여 명.
한 전 원장이 애란원으로 처음 왔던 90년대, 지금보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더 곱지 않았습니다. 한 전 원장을 꾸짖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하나님께 받은 소명으로 뚝심 있게 애란원을 지켰습니다. 한원장의 진심에 동참하는 사람도 하나 둘 생겨났습니다.
[한상순 전 원장/애란원: 엄마들의 아픔을 보면서 이건 미혼모들을 위한 선교기관이 되어야겠다.. 라고 생각을 했죠. 근데 놀랍게도 그 이후부터 채워주시더라고요. 봉사자들도 막 보내주시고...한 생명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도와주신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 애란원이 있을 수 있었죠. ]
지난해 아프리카 브룬디에서 사역하다 잠시 한국에 들어온 이경희 선교사는 한 전 원장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동료입니다.
애란원에서 미혼모와 입양 부모들의 상담을 맡고 있는 이경희 선교사.
그녀 역시 한 때는 애란원의 돌봄이 필요한 여성이었습니다. 결혼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길 소원했지만 지속적인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세 번째 아이를 가진 채 35살의 나이에 애란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이경희 선교사 / 애란원출신: 그때는 남편이 폭력이 있어서 살려고 집을 나왔었어요. 아이하고 나하고 둘다 죽었으면 좋겠다. 너무 살 길이 막막했었어요. ]
이 선교사의 특별한 이력은 상담 받는 이들의 마음을 여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경희 선교사 / 애란원: 제가 입양이 됐었고, 입양을 보내봤고 양쪽을 잘 아니까 제가 얘기하면 확 달라지는거예요.]
누구에게서 어디서 태어나든 상관없이 모든 생명을 소중히 길러내는 사회가 속히 오길 바란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에서 소외받고 고통 받는 미혼모들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