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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6.25 참전용사'에서 '폐지줍는 목사'로, 이기복 목사

1190등록 201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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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오늘은 제 67주년 국군의 날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써온 국군장병들의 노고를
기억해야 하는 날인데요.
참전용사로써 나라를 지키고
지금은 북한선교를 위해
힘쓰고 있는 목회자가 있어 만나봤습니다.
이기복 목사의 참전 이야기를
박꽃초롱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팅◀

긴 복도 끝으로
6.25 참전 국가 유공자의 집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함경북도 곡산이 고향인 이기복 목사는
1950년 6.25발발 당시
북에서 인민군 훈련까지 마친 예비 병사였습니다.

그러나 인민군으로서 참전을 원치 않았던 이 목사는
동네에 국군이 전진해오자
곧바로 남한군의 편에서 동네 치안사업을 맡다
국군 8사단 수색대로 입대하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기복 목사 /6.25 참전용사

당시 그의 나이 22세.
젊은 나이였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이기복 목사의
의지는 굳건했습니다.
그는 목숨까지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인터뷰] 이기복 목사 /6.25 참전용사

수색대대로서의 임무를 마친 뒤에는
군종과 하사관으로 다시 일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참전용사들을 모아 예배를 인도하고
때로는 세례도 집례하며
전쟁터에 임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인터뷰] 이기복 목사 /6.25 참전용사

강원도 횡성 산 속에서 중공군에 포위돼
보름 동안 한 끼도 못 먹은 채 숨어 지낸 일
전우의 시체와 날아드는 총탄을 피해 개울을 건넜던 일.
까마득한 옛일이지만
아직도 이 목사의 기억 속에서는 생생한 어제일 같습니다.

그 속에서 목숨을 살려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는 한날도 편히 지낼 수 없습니다.
몇 해 전부터 그는 폐지를 주우며 번 돈으로
북한 선교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옷가지들과 헌 신발들을 보낸 일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인터뷰] 이기복 목사 /6.25 참전용사

나라를 위해 젊은 시절을 바친 6.25 참전용사.
북한 선교를 위해 매일 새벽 폐지를 줍는 은퇴 목사.
두 가지 이름을 가진 이기복 목사의 삶이
애국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에게
가슴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CGN투데이 박꽃초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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