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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계에 큰 획 그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

875등록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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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빌리 그레이엄 목사 소천 소식에
전세계가 애도의 뜻을 보내고 있는데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생전
한국 교회와 전세계 선교계에 끼친 영향을 정리해봤습니다.
보도에 박꽃초롱 기잡니다.


◀리포트▶

20세기 최고의 복음전도자로 꼽히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처음 한국을 찾은 건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입니다.

당시 서울 영락교회를 비롯해
다수의 교회에서 전도대회를 가졌고
한경직 목사가 통역을 맡았습니다.

한경직 목사와의 친분은
두번째 방한으로 이어졌습니다.

1973년 방한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여의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를 개최합니다.

당시 통역을 부탁 받았던 한경직 목사를 대신해
김장환 목사가 통역을 맡았습니다.

[인터뷰] 김장환 목사 / 1973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통역

5일간 무려 100만 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집회에 참석했고
지금까지 단일 집회로는 최다 인원으로 손꼽힙니다.

전문가들은
1960년대부터 이어진 한국교회 민족복음화 운동이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를 통해 확장됐고
이후 1974 엑스플로 74 전도대회
1977년 77민족복음화 대성회로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박명수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교회사
1960년 대 부터 한경직 목사님을 중심으로 민족복음화 운동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197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 빌리그레이엄 목사님을 초청해서 대규모 부흥집회를 해서
하나의 큰 절정을 이루게 됐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한국교회를 부흥시키는 기폭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전세계 선교계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큽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주축으로 시작된 로잔대회는
당시 복음주의 진영뿐만 아니라 세계 선교계에
새로운 전환기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1961년 WCC 뉴델리 대회에서
세계선교협의회가
에큐메니컬 진영에 흡수되면서
해외선교사의 불필요성이 언급될 정도로
선교계가 위기를 맞이할 때
로잔 대회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부상했습니다.

당시 로잔대회에서는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적 책임’이 포함된 ‘로잔 언약’이 발표됐고
미전도 종족, 총체적 선교의 시초가 됐습니다.

[인터뷰] 최형근 총무 / 한국로잔중앙위원회
1973년 에큐메니켤 진영에서 열린 방콕대회 이후에 위기를 감지한 복음주의자들이 세계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바로 1974년 제1차 로잔대회였다고 볼수 있고
복음 주의 진영내에 세계선교운동이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소천 소식으로
전세계가 애도의 뜻을 전하는 가운데,
이번 장례식에서 조사를 낭독하는 김장환 목사는
그를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기억했습니다.

[인터뷰] 김장환 목사 / 1973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통역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례식은
다음달 2일 그가 태어난
미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 위치한
빌리 그레이엄 기념 도서관에서 치뤄 질 예정입니다.

CGN투데이 박꽃초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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