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소개
1880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태어난
최흥종 목사는 젊은 시절 '망치'로 불리며
거리를 누볐지만 예수를 영접한 후 삶이 변화했습니다.
1904년 어느 날
유진벨 선교사의 부탁으로
포사이드 선교사를 마중 나간 최 목사는
광주로 돌아오는 도중 포사이드 선교사가
피와 고름이 흐르는 환센병 환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주승민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역사신학
포사이드 선교사를 통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낀 최흥종 목사는
자신도 일평생
나병환자를 섬기기로 결심합니다.
최 목사는
생업을 위해 다니던 전남 경무청을 퇴직하고
제중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병환자가 점점 많아져
병원 수용 공간이 부족해지자
최흥종 목사는 자신의 땅 천 평을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한국 최초의 한센병 전문병원인
'광주나병원'이 설립됐습니다.
그럼에도 나병환자들이 계속 늘어나자
최 목사는 나병환자들을 위한 공간 마련을
도지사에게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요청은 거절됐고
최 목사는 1932년 나병환자들과 함께
광주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걸어가는 행진을 보입니다.
광주에서
150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시작한 행진은
서울에 도착할 즈음 약 500명으로 늘어나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인터뷰] 주승민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역사신학
최 목사는 1935년 3월 17일
본인 스스로 사망통지서를 작성해
육적 인간의 죽음을 선포합니다.
이후 1966년 사망할 때까지
걸인, 나병환자, 결핵환자들과 함께
산속과 거리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인터뷰] 주승민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역사신학
사랑을 전하기 위해
낮은 곳을 찾아가는 최흥종 목사의 모습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푯대가 됩니다.
CGN투데이 박건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