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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독교문화유산보존…마음을 합하는 일부터

507등록 201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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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최근 새롭게 뜨고 있는 근대역사문화마을이 있습니다.
바로 한옥과 근대 건축물들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광주 양림동인데요.

유진벨 선교사를 비롯해 수많은
선교사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지자체를 중심으로 문화마을 사업이 조성되다보니
잘못 표기됐거나 제대로 보존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권지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근대유산의 보고라 불릴 만큼
초기 서양 선교사들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는 남구 양림동입니다.

한국전쟁당시 전쟁고아들을 보육하는
장소였던 우월슨 선교사 사택과
1909년 순교한 오웬선교사 기념관
3.1운동 당시 학생들이 고종황제 장례식장에서 입었던
무명옷을 잘라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만세 운동을 펼쳤던 수피아 여고 등.

1904년부터 1985년 까지 거주하며
이 땅의 근대화와 선진화를 위해 애쓴
선교 유적 22곳이 남아 있습니다.

동서양의 조화가 어우러져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이곳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처음 시작된 건 2004년부텁니다.

광주광역시가 2014년,
양림동 역사문화마을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관광객만 2만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고
광주 남구는 2017 올해의 관광도시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간 특정 종교라는 이유로
기독교의 개입이 배제돼 온 탓에
잘못 표기되어 수정 보완이 필요한 기록물이 많다는 것이
학계와 교계의 주장입니다.

[임영근 목사 / 한국기독교문화유산보존협회 사무총장]

한국기독교문화유산보존협회측은
양림동 선교사 묘지에는 23명이 안치돼 있다고 알려졌지만
묘비 하나 없이 매장된 선교사가지 합하면 46명이 묻혀있다고 말합니다.

이 뿐 아니라 제멋대로 해석된 것도 부지기수
소실되거나 훼손된 것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1904년, 목포와 나주에서 정착에 실패한 유진벨(배유지)선교사가 광주에 와
서양인과 건축물에 호기심을 갖고 찾아온
주민 200여 명과 함께 처음 예배를 드린 곳입니다.

선교사 사택에서 도서관으로 변한 이 곳엔
선교역사를 증명할 비석만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선교사 사택 9채 중 남아 있는 건물은 3채 뿐인데
그 중 한 채마저 최근 광주기독병원의 직장어린이집 신축 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됐습니다.

1960년대 건립됐다고 주장하는 기독병원측과
1940년대 건물이라는 주민들과 한기문 측의 의견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상탭니다.

유진벨 선교사의 두 번재 사택 모양을 본따 2012년 준공을 마친 후
지난 4월 개관한 유진벨 기념관은 여전히 제대로 된 자료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광주 남구청 공무원]

이런 가운데 4년간의 노력 끝에 2014년 설립된
한국기독교문화유산보존협회가 최근 호남지회를 세우고
양림동을 기독교문화지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역시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임영근 목사 / 한국기독교문화유산보존협회 사무총장]

선교사들이 떠난 후 각각 교단도 다른 세 교회로 나누어진 양림교회의 모습이
죽은 땅이었던 양림산 일대에 예수의 생명을 불어넣은
선교사들의 마음과 비전을 얼마나 잘 이어왔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cgn투데이 권지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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