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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낙태 반대 운동 펼치는 미 단체

689등록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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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전 세계 선교지 소식을 전해 드리는 월드리포트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낙태죄 폐지가 공론화되면서
찬반 논쟁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에는 아일랜드 정부가 낙태 금지 규정을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두고 국민투표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아일랜드가 그간 카톨릭 국가로서 낙태금지법을 엄격하게 규정해온 만큼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오늘 전해드릴 첫 소식은
십대 시절 낙태를 위해 수술대에 올랐지만
지금은 낙태 반대 운동 단체를 이끌며
수많은 아기를 구하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캐서린 글렌 포스터 회장은 낙태 반대 운동 단체인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포 라이프 (Americans United for Life)를 이끌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 낙태 클리닉에서의 끔찍한 경험을 겪으며
그녀는 낙태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인터뷰] 캐서린 글렌 포스터 /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포 라이프
“19살 때, 의도치 않게 임신했어요. 저는 정말 혼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저 혼자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저의 인생을 지켜야만 했어요.”

캐서린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녀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수술이 시작되기 직전, 캐서린은 마음을 바꿨습니다.

[인터뷰] 캐서린 글렌 포스터 /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포 라이프
“일어나겠다고 말했어요. 제발 저를 일으켜달라고,
수술대 위에서 내려달라고 했어요. 밖으로 나가겠다고,
수술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캐서린은 자기 결정권을 가진 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낙태 반대 시위에서 캐서린은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인터뷰] 캐서린 글렌 포스터 /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포 라이프
“못하겠다고, 이 일은 잘못됐다고 했어요. 저는 정말 잘못됐다고 느꼈죠.
저를 나가게 해달라고, 수술비는 가지라고 했어요.
그러자 그들이 더 많은 사람을 불렀고, 네 사람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간호사와 직원이 저의 팔을 하나씩 붙잡고, 의사가 낙태 수술을 했어요.
저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결정권을 가진 여성도, 나 자신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저를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그저 들어왔다가 나갔어요.
그들은 저와 저의 아이가 사라지기를 바랐죠.”

캐서린은 지금도 수십 년 전의 그 일로 비통함과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캐서린 글렌 포스터 /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포 라이프
“수술이 끝나고 나서 저는 혼자 회복실에 남겨졌어요.
시간을 돌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한 시간 전으로, 일주일 전으로,
한 달 전으로 돌아가길 바라면서 모든 결정을 다시 해봤어요.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영적으로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캐서린은 대학을 마친 뒤 법대에 들어갔고,
이후 낙태를 반대하는 법률 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캐서리인 회장직을 맡고 있는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포 라이프는
다양한 분야에서 낙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인터뷰] 캐서린 글렌 포스터 /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포 라이프
“저와 같은 경험을 하는 여성들이 없도록 우리는 입법 기관, 법원, 문화 속에서 일합니다.”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체가 주도해 입법시킨 주법도 있습니다.

[인터뷰] 캐서린 글렌 포스터 /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포 라이프
“와이오밍 주에서 28년 만에 처음으로 낙태 반대 관련 법을 통과시켰어요.
초음파 검사 요청입니다.”

낙태 센터에서 초음파 기록을 남길 경우, 환자가 요청하면
초음파 사진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19살의 캐서린은 그 요청을 거부당했었습니다.

[인터뷰] 캐서린 글렌 포스터 /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포 라이프
“저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낙태 센터에서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보게 해달라고 했어요. 요청했지만 거부 당했습니다.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게 항상 저를 괴롭혀요.
저는 항상 그때를 생각하며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와이오밍주의 여성들이 그런 권리를 얻었다는 사실은 저에게는 큰 의미입니다.”

*.....*.....*

다음 소식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수단과 방법은 참 다양합니다.
캄보디아의 한 마을에서는 영어 교실이 복음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크리스천 인구가 전체 인구의 2%에도 못미칩니다.
더욱이 2007년에는 노방전도 금지 법안이 발표되면 선교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다행이 최근에는 이전보다 선교가 자유로워졌지만
불교국가인 캄보디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 최근 영어 교실을 통해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복음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소켕 켓은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을에 찾아왔던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됐습니다.
이후 켓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이 컸습니다.

[인터뷰] 소켕 켓 설립자 / 굿 씨드 스쿨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영어 교육으로 사역을 시작하라고 하셨어요.”

굿 씨드 스쿨은 캄보디아의 몇 안 되는 교회들과 협력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모로는 학생들에게 성경 교재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복음을 흘려보냅니다.

[인터뷰] 비키 먼리 선교사 / 굿 씨드 스쿨
“이 책으로 가르쳐요. 마가복음을 이용한 교육 자료입니다.
학생들이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이 교재를 통해서 복음을 나눕니다.”

굿 씨드 스쿨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작은 교실에서 소수의 학생들이 영어를 배웠지만, 이제는 2층 건물에서 백여 명의 학생들이 영어를 배웁니다.
소켕 켓은 앞으로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기 소망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소켕 켓 설립자 / 굿 씨드 스쿨
“저의 인생은 예수님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분께서 무엇으로 부르시든 저는 순종할 겁니다.”

굿 씨드 스쿨은 계속해서 확장 중이며 교실이
더 많은 학생으로 가득 차길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CBN과 함께 하는 월드리포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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