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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3·1절 특집] 감추려한 진실, '제암리교회 학살사건'

703등록 201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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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1 운동이 일어난 이후
경기도 수원시 향남군 제암리에서는
일본군이 주민들을 집단 학살했던 사건이 일어났는데요.

제암리교회 학살사건의 진실과 의미를 짚어봤습니다.
이남진 기잡니다.

▶리포트◀

민족 스스로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민족자결주의.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서 채택된 미 윌슨 대통령의 사상은
일제 식민치하 암울했던 우리 민족에 희망의 불씨를 심어줬습니다.
동시에 항일시위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홍은진 문화관광해설사 /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 우리가 자유를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는 열망이 퍼지게 됩니다. 3월1일 시작된 만세운동은 경부 축을 중심으로 퍼지게 됩니다. 화성지역은 더욱 조직적이고 계획적이고 치열했습니다.]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며 분열을 꾀한 일제의 억압에도
시위는 그 해 3월 말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일제는 검거반을 보내 3·1운동의 보복조치에 착수합니다.

그러던 중, 4월2일,
수원 화성일대 장안면 수촌리와 우정읍 주민들이
항일 폭력 시위를 벌이고 주재소 건물을 파손했습니다.
이에 일본군은 두 차례에 걸쳐 수촌리 일대를 포위,
주모자 204명을 검거합니다.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은 그 뒤 발생합니다.
4월15일 제암리에 도착한 일본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의 군대는
강연이 있다고 속여 미리 정보를 입수한 주민 지도자 20여명을
제암리 교회당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돌연 출입문과 창문을 잠그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교회건물에 석유를 끼얹어 불을 질렀고,
뛰쳐나오는 사람은 총칼로 죽였습니다.

교회 건물 안에서 22명, 밖에서 6명 등 모두 28명이 살해됐고,
기독교 순교자는 10여 명에 달합니다.
이를 목격한 주민들이 거주하는 민가에도 불을 질러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주택 31채가 잿더미가 됐습니다.

[지금 제 뒤로 보이는 이곳이 제암리 학살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입니다.
지금은 기념탑으로 남아있습니다.]

참상을 전해들은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와 영국 선교사 스코필드가
이튿날 현장으로 달려가 참상을 듣고 사진과 기록을 남깁니다.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에는
당시의 참상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 보관돼 있습니다.

[김지민 (13세) / 효성서초등학교 : 정동례 할머니가 뼈를 보고 우시는 모습이 제일 슬펐어요. 그리고 기억에 남아요.]

[위동민 (17세) / 김천 율곡고등학교 : 너무 잔인하고 인간으로선 할 짓이 못되는 거 같아요.]

일제는 사건을 덮으려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외신들과 일본 내 언론 보도로 여론이 들끓자
아리타 중위를 형식적으로나마 군법회의에 세우기에 이릅니다.

[홍은진 문화관광해설사 /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하세가와 총독이 이 지역에 와서 사과를 했었습니다. 학살을 저지른 아리타를 재판에 회부를 했습니다. 근신 30일을 받고 복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형식적인 사과와는 달리
진심으로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치고
불타 없어진 교회를 다시 세우고자
모금 운동을 벌였던 일본 기독교인들의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참상을 알린 주민들과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진실이 묻히지 않았던 것처럼
올바른 역사를 후대에 물려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CGN투데이, 이남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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