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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목회와신학과 함께하는 오지교회 탐방 '완주 들녘교회'

439등록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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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희 : 목회와신학과 함께하는 ‘오지교회를 가다’
오늘은 유기농 농법으로 농촌을 살리는 김제들녘교회를 찾아가봤습니다.

스튜디오에 이동환기자 나와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동환기자 : 안녕하세요. 목회와 신학, 이동환기자입니다.

아나운서 : 다녀오신 교회 소개해주시죠.

이동환기자 : 네. 전북 김제 들녘교회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교회가 문화공간도 제공하면서 갈수록 쇠퇴해가는 농촌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교회입니다.

화면으로 보시는 것처럼 아직은 봄맞이 채비 중인 논밭이 검붉은 속살을 드러낸 모습이었는데요.
이곳에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뿌려졌는지는 취재를 하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유기농으로 지어진 쌀과 주민들이 재배한 각종 농산물, 참기들 들기름은
서울에 있는 교회로 판매됩니다. 교인들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셈입니다.

아나운서 : 그렇군요. 한 마디로 도, 농 교회의 상생 모델을 보여주는 거네요.

이동환기자 : 그렇습니다. 20년간 들녘교회와 자매결연을 맺어온 향린교회입니다.
교회 한 쪽 공간에 이렇게 농산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고 주일마다 예배 후, 판매가 이뤄지는데요. 이미 20년째 이어오고 있는 만큼 교인들에겐 거부감이 없고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교인 인터뷰]
[담당자]

아나운서 : 단순히 농산물 거래만 하는 것이 아닌가 봐요.

이동환기자 : 맞습니다. 결연을 맺은 건 물론 쇠퇴하는 농촌을 살려보자는 의미도 있었지만
농촌교회와 도시교회가 그야말로 자매결연을 맺어 영적, 인적 교류를 해보자는 의미가
더 컸습니다.
두 교회가 예배 때마다 상대방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여름에는 향린교회 교인들이 들녘교회에 찾아가 농활이나 문화집회도 열어 마음을 나눕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 들녘교회 교인들이 친정 딸집에 가는 마음으로 서울 향린교회를 찾기도 하고요. 가정 대 가정으로 함께 숙식을 제공하며 또 하나의 가족이 됐구나 싶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함께 살아가는 상생의 모델을 보여주는 셈인데요. 교회가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기 시작한 건, 교회를 27년째 지키고 있는 이세우 목사가 부임해오면서 부텁니다. 들녘교회 역사상 가장 오래 교회를 지킨 목사라고 하는데요. 1990년 31살 젊은 나이에 부임해 지금까지 들녘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세우 목사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시죠.

[이세우 목사]

아나운서 : 그런데 처음 젊은 목사가 농촌 목회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농촌 목회를 하게 되신건가요?

이동환기자 : 이세우 목사는 처음 신학을 할 때부터 농촌 목회를 꿈꿨다고 합니다. 처음 들녘교회를 부임했을 때, 교인은 50여 명 정도였는데요. 이상하리만큼 이 목사를 바라보는 교인들의 시선이 차갑고 교회 분위기는 냉랭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44년간 거쳐 간 목회자가 33명 이었던 거죠.

아나운서 : 1년도 못 버티고 떠난 분들도 계셨다는 거네요.

이동환기자 : 그렇죠. 이세우 목사가 부임했을 때도 교인들 마음에는 이 사람도 곧 떠날 거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또 아주 오래전, 해방 무렾에 한국전쟁 중에 교회 책임자가 마을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인본인 들이 마을을 떠나자 마을 주민들이 거주지에 마을 회관을 만들었는데 당시 기독교인이었던 면장이 마을회관을 교회로 만들었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장소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거죠. 그 상처와 불편한 관계가 이어져왔다는데요. 그래서 이세우 목사가 처음 한 일은 교회의 신뢰 회복이었습니다.

아나운서 : 신뢰 회복이 하루 이틀 만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오래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쌓는 수밖에는 없는 거잖아요.

이동환기자 : 네. 그래서 이 목사가 선택 방안이 두 가지였습니다.
얼핏 이해가 안 가실 수도 있겠지만 목회자의 사례비를 총회가 지정한 생활보장 수준으로 줄 것으로 요구했습니다. 교인들이 목회자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그 약속을 27년째 지키고 있는 셈이고요.
두 번째가 바로 농사였습니다. 직접 농사짓는 방법을 교인들에게 배우면서 교인들과 저절로
친해지게 된 거죠.

아나운서 : 그럼 처음부터 유기농법을 시행한건 아니었겠군요.

이동환기자 : 네, 처음엔 그저 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시작한 것이었는데 마을에서 한 번은 교인 한 명이 농약 중독에 걸려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일이 계기가 돼 우렁이를 활용한 유기농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는데요. 판로개척부터 유기농산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까지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엔 이 목사가 직접 주문을 받고 배달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에 혼자서 배달을 하는 일이 쉽지 않죠. 그래서 농촌 목회협의회에 도시 교회와 농촌 교회간의 도농직거래를 제안해 향린교회를 비롯한 5개 교회와 직거래를 시작했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품질에 대한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고 해요. 유기농산물이 농약을 치지 않으니까 보관도 어렵고
겉보기에도 농약을 친 것보다는 부실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교인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남을 갖다보니 자연스레 신뢰가 쌓이고 책임감도 갖게 됐다고 합니다.

아나운서 :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정말 좋은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농촌 교회 현실이 여의치 않잖아요. 이세우 목사도 걱정이 많을 것 같아요.

이동환기자 : 물론입니다. 아무래도 고령화가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이 목사가 처음 부임했을 당시, 27년 전에는 20가구가 살던 마을에 지금은 90가구가 살고 있고
당시 50대였던 교인들이 지금은 80대가 됐습니다. 그 중 50가구 이상이 독거노인이고요.
예배 참석이 어려울 만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많아졌습니다.

주일학교도 한때 70-80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주일학교에는 2명의 어린이가 남아 있습니다.
젊은 귀농인이 있어야 마을에 어린이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귀농자들의 발길도 뜸한 것이 현실이고요. 이 목사는 쇠퇴해 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환경운동과 농촌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폐교에 처한 초등학교를 살려 학부모가 선호하는 학교로 만든 일입니다.

농촌이 미래라고들 말은 하지만 정부도, 교회도 얼마나 농촌의 현실에 관심을 갖고 함께 동참하는지는 우리가 함께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나운서 : 네. 이런 교회들이 앞으로 더 많이 생겨나야 할 것 같습니다. 농촌의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는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동환기자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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