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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최초의 여성 의료선교사 엘러스와 제이콥슨

1310등록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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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한국에 의료 선교사가 첫 발을 내딛기 전
조선시대에는
치료 한 번 제대로 받기 어려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을 방문해
의료와 선교 사역을 펼쳤던
애니 엘러스 선교사와
안나 제이콥슨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들의 삶을 조명해봅니다.

보도에 신소라 기잡니다.

◀리포트▶
의료시설, 기술 등이 현저히 부족했던 조선에 들어와
활발한 의료선교사역을 펼쳤던
애니 엘러스 선교사와 안나 제이콥슨 선교사.

방문 시기는 서로 달랐지만
애니 엘러스는 최초의 여성 의사로
안나 제이콥슨은 최초의 여성 간호사로서
조선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매진했던 인물들입니다.

애니 엘러스 선교사는
페르시아 의료선교사가 되기 위해
보스턴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었지만

당시 조선에서 의료선교 중이던
알렌선교사의 간곡한 요청으로
1886년 7월 4일 24살의 나이로 조선 땅을 밟는
최초의 여 의사가 됩니다.

남녀가 유별했던 조선시대,
남자인 알렌 선교사에게
몸을 보이길 싫어했던 여 환자들에게 있어
애니 엘러스 선교사의 입국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희망 그 자체였습니다.

인천 제물포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 그녀는
제중원에서 3년 동안 알렌 선교사와 함께
여성 환자들을 치료했으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또 8년 간 명성황후의 주치의로도 활동한
애니 엘러스 선교사는
황후의 옥체를 진료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3품 벼슬에 해당하는
높은 품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이용민 박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의료선교사로서 활발히 활동해온 그녀는
1887년 육영공원의 교사로 초빙된
번커 선교사와의 약혼 이후
교육사역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제중원과 관련된 모든 의료사역을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이자 여의사인
릴리아스 호튼에게 위임하고

1888년 3월 12일 자신의 집에서
학생 두 명과 함께
정신 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여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인터뷰: 이희천 교장 /정신여자고등학교]

애니 앨러스 선교사의 뒤를 이어
의료사역에 뛰어든 안나 제이콥슨 선교사.

제중원에서 의사들의 수술을 돕고 환자들을 돌봐달라는
미국 북장로회의 요청에
1895년 4월 6일 조선으로 향했습니다.

제중원의 1대 간호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병든 사람들을 밤낮으로 돌보며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는데 힘썼으며
조선인들에게 간호사업과 간호교육을 알리는 데 공헌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된 과로와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조선에 온 지 약 2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이 소식은 ‘독립신문’에서도 크게 실릴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자막화면>
‘(제콥슨은) 죽는 사람의 마음들을 위로하고 산 사람의 행실을 옳게 가르치며
세계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조선에 빛나도록 일을 하였다.
…(중략) 그 부인은 한 달 동안을 앓다가 하늘로 갔으니 조선 인민에게는 크게 손해라.
마지막 한번 조선백성 사랑하던 이 얼굴을 보오. -1897년 1월 21일자 독립신문-‘

[인터뷰: 여인석 관장 /세브란스 동은의학박물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돌보지 않았던 조선인 환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쌌던
애니 엘러스 선교사와 안나 제이콥슨 선교사.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해
평생을 헌신했던 그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CGN 투데이, 신소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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