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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집, 손정도 목사의 삶

633등록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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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오늘은 어제에 이어
기독 정신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에 힘썼던
크리스천의 삶을 조명합니다.

‘손정도’ 목사는
평생 기독교 진리를 삶에 적용시키며 살았던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인데요.

유교집안을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항일투쟁을 했던 그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보도에 신소라 기잡니다.

◀리포트▶
1872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난 손정도 목사는

유교사상이 뿌리 깊은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며
조선인으로서 평범한 삶을 꿈꿨습니다.

23살이 되던 해 관리등용시험을 보러 평양을 가던 중
우연히 하룻밤을 묵게 된 목사의 집에서 복음을 접한 뒤
기독교로 개종합니다.

그날 손 목사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부수고 상투를 자른 후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며 기독교 교리를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에서 비난받고 버림 받은 후
오갈 데가 없어지자 그는 평양으로 가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존 무어 목사 밑에서 일하며
선교사들을 가족 삼아 가까이 지냈습니다.

1901년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 후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과 같은 반이 되면서
손정도 목사는 그와 친구가 됩니다.

조선을 향한 일본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자
손정도 목사는 도산 안창호 선생과 전덕기 목사 등
크리스천 독립 운동가들과 함께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를 만들어 항일운동에 나섰습니다.

조선에서 3.1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날 당시
그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발 빠르게 상해로 가
독립 운동가와 함께 임시정부 조직에 착수했습니다.

그곳에서 손정도 목사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민족을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걸레 정신’을 알렸습니다.

그가 말하는 ‘걸레’의 참된 의미는
깨끗한 환경을 바라는 주인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 사용하듯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경에
묵묵히 희생하려는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전화인터뷰: 이강전 상임공동대표 / 애국지사손정도목사기념사업회]

그의 기독 정신은
1911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하얼빈에서 수많은 개척교회를 세우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돕기 위해
자비량으로 땅을 주고 일하게 하는 등
다양한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학창시절 친하게 지냈던
김형직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김일성을 양자로 데려와
친자 못지않게 양육에 힘썼습니다.

후에 김일성이 기독교 교리를 자신을 우상화하는
주체사상에 이용한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눈 감는 순간까지 한결같았던 나라 사랑의 마음이
그가 남과 북에서 모두
독립운동가로서 존경받는 이유입니다.

[인터뷰: 박경진 관장 /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일에
평생을 바쳤던 손정도 목사.

일본의 모진 고문으로 49살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았지만
나라와 민족을 향한 그의 뜨거운 사랑은
지금도 우리의 애국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합니다.

CGN 투데이, 신소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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