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소개
◀앵커멘트▶
한국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인 박형규 목사가
지난 18일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평생을 빈민선교와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며 ‘길 위의 목사’로 불렸었는데요.
그는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사역의 흔적은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자세한 소식 이주희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한국 민주화 운동의 큰 별,
박형규 목사가 지난 18일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박형규 목사의 소천 소식에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그의 빈소에는
성도들과 정계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김종인, 박지원. 이재오 등 정치인들 줄줄이 조문]
‘길 위의 목사’로 불렸던 박 목사는
빈민선교와 인권운동,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1960년 4.19혁명 당시부터 독재정권에 맞섰던 박형규 목사는
1973년 4월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플랜카드와 전단을
배포하려다 실패한 뒤 ‘내란예비음모죄’로 기소되고
[1973년 남산 부활절 사건]
1978년 2월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새 민주헌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3.1민주선언’을 발표했다가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1978년 기장 청년회 전주교육대회 시위사건 등]
여섯 차례 옥고를 치렀음에도
그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비보를 듣고 강진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자신의 결혼식 주례를 부탁할 만큼
평생을 멘토로 삼아왔습니다.
손 전 상임고문은
민주화의 큰 어른이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손 전 상임고문, 상주 자처하며 빈소 지켜>
[손학규 전 상임고문 / 더불어민주당: ]
덕수교회 손인웅 원로 목사도
한국교회의 개혁과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박 목사의 뜻을 받들어
우리가 그 길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형규 목사의 삶 본받고 이어가야]
[손인웅 원로목사 / 덕수교회: ]
평범한 목사였지만
4.19혁명으로 거리에서
피 흘리는 학생들을 목격한 이후
‘길 위’로 나온 박형규 목사.
평생을 바쳤던 그의 헌신과 노력은
우리 사회에 짙게 남아있습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치러집니다.
CGN투데이 이주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