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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수호자, 얀 후스

996등록 201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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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1517년보다
100년이 앞 서
부패한 집권 세력에 맞섰던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후스인데요.

하나님의 말씀과
참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다 순교한
얀 후스의 삶을 조명해봅니다.

◀리포트▶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한 세기 전,
베들레헴 채플의 설교자로 활동했던 얀 후스는

어린 시절, 부와 명성을 쫒아 사제가 되고
프라하 대학의 총장을 지낼 정도로 성공하지만
위클리프의 저서를 접한 후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성경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던 1300년 경, 유럽에서
성직자들이 특권 의식을 앞세워 부패를 일삼자
대중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고 성직자의 악덕을 비판하다 숨진
위클리프의 정신이 얀 후스의 마음에 전달된 겁니다.

당시 카톨릭 교황이
‘자비의 여름’이란 이름의 면죄부를 판매하고
술집과 도박장을 운영하는 등, 부정부패를 일삼자

이에 눈감지 않고
사람은 돈이 아니라 '회개'로만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외치며 기득권 세력을 비판했습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주장한 신학적 논의의
많은 부분이 이미 얀 후스를 통해 설파된 셈입니다.





국왕의 후원을 잃고 프라하에서 추방된 후에도
그는 대중 앞에서 설교를 멈추지 않았고
가르침대로 살아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결국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하지만
그의 억울한 죽음은 체코 국민들의 강한 반발을 샀고
개혁의 기운은 체코 전역으로 번져나갔습니다.

그의 죽음 이 후 조직된 단체들을 중심으로
교회개혁 운동이 전개되고
이 때 만들어진 프라하 신앙 4개 조항은
후스파교회 신앙고백의 토대가 됩니다.

복음서의 진실 안에서
나는 기꺼이 죽을 것이요.

죽음 앞에서도 용감히 외쳤던
얀 후스의 고백입니다

후스는 교회의 부와 사치스러움은
사악함과 불신앙의 표징이라며

어떤 서슬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 담대함은
오직 성경, 오직 말씀위에 바로 서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았기에 가능했습니다.

네레이션 : 주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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