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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불의를 보고 침묵할 것인가!’ 존 위클리프

1560등록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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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유럽사에서도 역경의 시대라 불릴 만큼
엄청난 재난이 몰려왔던 14세기.
영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무능한 군주의 사치, 타락으로
정치는 매우 불안했고
백년전쟁과
예고 없이 불어 닥친 흑사병과 대기근으로
농민들의 삶은 최악으로 치달았는데요.

중세 암흑기에 개혁의 주춧돌이 됐던
존 위클리프의 삶과 정신을 돌아봅니다.


◀리포팅▶
물질만능주의,
기득권세력의 사치와 방탕이 절정을 이루고
불의한 정치에 편승해 교회는 거짓교리로
시민들을 억압했던 14세기 유럽,

합법적인 통치권은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온다고 주장하며
로마카톨릭교회의 부정부패에 저항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 존 위클리프입니다.

존 위클리프는 1329년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 태어나
재능과 학식을 갖춘 인재로,
또 신실한 신앙인으로 자라납니다.

당시 위클리프는 수도승들의 나태와 시주행위.
로마카톨릭교회의 진리를 왜곡하는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의 저서 시민 통치에 대해에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제시하고
교황의 폐지를 부르짖으며

사치와 방탕, 거짓으로 시민들을 빈곤과 암흑으로 몰았던
교황에 도전했던 위클리프는

권력과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더욱 담대해졌습니다.

그는 카톨릭교회가 무너뜨린 성경의 권위를 다시 세웠습니다.

롤라드라는 가난한 사제 전도단을 조직해
국경너머까지 진리를 전파하고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 일반인들이 미신을 끊고
성경을 통해 직접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당시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일반 시민들에게
위클리프의 성경번역은
스스로 진리에 눈뜨게 하는 등불이 됐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일일이 손으로 필사해야 했지만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그의 열성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그를 이단으로 규정해 세 번이나 법정에 소환했지만
그 때마다 그는 교회 정치를 서슴없이 비난하고
악습을 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죽음을 불사했던 위클리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카톨릭교회는 그의 유골을 다시 파내어
대중 앞에서 불사르고 그 재를 인근 스위프트 강에 던졌습니다.

살아서 침묵하기를 거부하고
죽음으로 진리를 수호할 것을 선택했던 위클리프의 정신이

150년 후 종교개혁자들을 일으키고
현재 불의한 한국 땅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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