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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량교회 "굣회의 역사가 민족의 역사"

193등록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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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100년이 넘는 한국교회를 돌아보며
우리가 회복할 정신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 여수 우학리 교회와
제주 모슬포교회에 이어
오늘은 125년 역사 속에서
소명을 감당해 온 부산 초량교회를 조명해봅니다.

권지연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한강 이남지방에 최초로 세워진 초량교회 역사관입니다.

1892년 11월, 베어드 선교사 부부가 사랑방에서
교인 4명과 함께 예배하기 시작한 교회는
1917년 70여 평의 건물로 준공됐습니다.

역사관에는 교회를 일군 선교사들의 감동적인 이야기와
한국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슬픔을 이고 지고
민초들과 함께 싸우며 버텨온
신앙인들의 치열함이 보물처럼 간직돼 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반대운동의
진원지 역할을 한 전통을 지닌 교회이기도 합니다.

[곽원섭 장로 / 초량교회 역사위원장 : 베어드 선교사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교리를 정통성 있게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일제 38년에 총회가 신사참배를 하게 되고 그럴 때 우리는 신사참배 못하겠다고 학교 문을 닫았죠. 그 사상을 받은 분이 조만식 장로. 그 분이 숭실학당을 나왔어요. 조만식장로가 오산중학교 교장 할 때 배운 주기철 목사가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베어드 선교사 조만식 장로, 주기철 목사.. 경상남도 부산 순교자들이 가장 많은 곳이 부산 경남이지 않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킨 주기철 목사가
1926년,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3대 담임으로 부임할 당시 말씀을 선포했던 강대상도
역사관 한 쪽에 보관돼 고이 간직돼 있습니다.


[곽원섭 장로 / 초량교회 역사위원장 : 주기철 목사가 처음 부임할 당시 160명 이었는데 떠날 때는 400명이 됐다고 해요. 동구 땅에 2천 명 정도가 살았는데 20프로가 우리교회 교인이었죠. 주기철 목사님이 초량교회를 떠난 후에도 신사참배 안하고 나무 풀뿌리 먹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선조들이 얼마나 도망 다니며 애썼는지...
]

6.25 전쟁 당시에는 피란민을 돌보며
민족의 아픔을 보듬었습니다.

당시 개성에서 부산으로 피난 왔던 정금준 장로는
당시의 눈물겨운 예배를 잊지 못합니다.


[정금준 장로(92세) / 초량교회 : 목사, 장로들이 다 초량교회로 모여서
잠도 제대로 안자고 철야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요즘은 교회가도 기도하는 사람 별로 없고,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별로 안보여요.]
]

이밖에도 나라와 민족, 지역사회의 아픔을 외면치 않고
신앙으로 맞섰던,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교회는

외환위기 때에는 빛과소금복지재단을 설립해
지금까지 지역사회의 약자들을 돌보며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125년간 이어져온 교회의 발자취가
진정한 교회의 역할을 생각하게 합니다.

CGN투데이 권지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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