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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통한 이상사회를 꿈꾸다

739등록 20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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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6월 호국보훈의달을 맞아 조국을 위해 몸바친 이들을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많습니다.

CGN투데이는 오늘 부터 4주간 매주 금요일
조국의 복음을 위해 몸마치며 순례자로 살아간 믿음의 선조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우리의 민족이 역사적으로 암울했던 시기,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가난한 농촌의 빈곤 퇴치와 영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이상촌 건설을 위해
전 생애를 헌신한 김용기 장로의 삶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보도에 허성진 기자입니다.


◀리포트▶

가나안농군학교는 오랜 기간 수많은 농촌 지도자들을 배출해 온 교육기관입니다.

설립자 김용기 장로는 한국 교회사에서
일평생 농민 교육과 국민 계몽을 위해 힘쓴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농촌과 농민의 부흥을 위해 자신의 생을 바쳤습니다.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괭이를 외치면서 복민 사상을 확립했습니다.

복민 사상은 모든 사람이 빈부의 격차 없이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물질적으로도 궁핍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개념입니다.

이는 사도행전 2장에 등장하는 초대교회의 공동체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전화 인터뷰 / 주승민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역사신학]

1931년 고향인 경기도 양주에 황무지를 개간해 세운 봉안 교회와 봉안 이상촌을 시작으로
1954년 경기도 광주에 가나안 교회와 농장을 설립한 후 1973년 원주에 제2가나안농군학교를 세웠습니다.

개간 작업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이상촌 건설을 위한 그의 굳은 신념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상촌은 근면과 검소 자급자족을 강조했던 공동체로 땅과 더불어 사는 수도원의 버금가는 공동체를 지향했습니다.

가난한 농촌을 영적·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만들고 싶은 포부는 결국 실천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단순히 농민들에게 정신적인 희망을 북돋아 주는 차원을 넘어
그는 새로운 영농법 개발과 영농기술 전수를 통해 실질적으로 농촌이 회생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1950년 용인에 세워진 원삼 에덴교회와 농장 그리고 복음 고등 농민 학원을 통해 이뤄진 농업교육은
점차 농촌계몽운동으로 확대되었고 훗날 개발도상국들의 농촌 살리기 운동의 모델이 됐습니다.

또한 당시 농촌에 만연해 있던 구시대적 생활습관과 미신 타파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전화 인터뷰 / 주승민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역사신학]

1962년 세워진 제1가나안농군학교는
신앙운동과 정신교육 및 농업기술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종합적인 사회교육기관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시작된 운동과 훈련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국민들로부터 대대적인 호응을 얻으며
기독교인을 넘어 다양한 종교와 직업에 속한 사람들에도
근로와 검약 그리고 절제 훈련을 가르치는 보편적인 정신교육의 토대가 됐습니다.

[전화 인터뷰 / 주승민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역사신학]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은 김용기 장로가 펼친 이상촌 운동의 핵심 기반이었습니다.

그가 그렸던 이상촌은 경제적 풍요와 기독교 신앙이 조화를 이룬 공동체였습니다.

그는 자연친화적 영농법을 실천함으로 자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성서의 정신도 실천했습니다.

또한 그의 복민 사상은 자본주의의 역기능을 치료하는 나침반으로 오늘날에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전화 인터뷰 / 주승민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역사신학]

CGN 투데이 허성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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