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N 투데이에서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3.1 운동의 의미를 짚어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3.1 운동과 여성’을 주제로 강원도 독립운동에서 큰 역할을 했던 조화벽 여사를 조명합니다.
신효선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강원도 양양에서는 장날인 4월 4일부터 9일까지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유림들과 기독교인들이 양대 축이 되어 당시 8천 명이었던 양양 민중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끈 만세 운동의 중심에는 여성의 몸으로 백성들을 이끈 조화벽 여사가 있었습니다.
개성 호수돈 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유학하던 조화벽 여사는 버선목에 독립선언서를 숨겨 원산항, 대포항을 통해 고향인 양양으로 돌아왔습니다.
조화벽 여사는 당시 사람들이 터부시 해 인적이 드문 상여 가게에 숨어 숨겨온 독립선언서를 민중들에게 배포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인터뷰 : 추상호 대표 / 3.1운동 100주년 기념 사업회] 촛불을 켜놓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도 거기에서 그리고, 그러니까 일제가 그런 곳에서 그런 일을 하리라고는 짐작도 못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4월 4일 날 독립선언서하고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만세운동을 했다는 거예요.
바로 이 자리에서 조화벽 여사는 양양감리교회 청년들과 함께 강원도 지역에서 가장 큰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인터뷰 : 이재풍 국사편찬위원회 향토학자 / 양양감리교회 원로장로] 굉장히 조직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우리 기독교도들을 중심으로 해서 지역 인사들과 잘 교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요즘 국가에서 말하는 대중적으로 온 국민 전체가 평화적으로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바로 이곳이고, 지방 3.1 운동사로서는 양양이 가장 조직적으로 거창하게 이루어졌다고 하는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독립운동 이후 조화벽 여사는 유관순의 오빠인 유우석과 결혼해 옥바라지를 하는 등 독립운동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유관순 열사의 가족들을 보살폈습니다.
문화와 언어 등을 탄압하는 민족말살정책을 펼쳤던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2년에는 민족이 배워야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일념으로 양양 정명학원을 세워 문맹 퇴치와 교육에 앞장서 600여 명을 졸업시켰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여성으로서 평생을 바쳐 나라를 사랑한 조화벽 여사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 조선석 목사 / 양양감리교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 번 3.1 운동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시대에 가졌던 아픔과 저항과, 또 복음으로 살아가는, 그래서 다시 한 번 나라를 세우고 민족을 사랑하는 그런 기독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