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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선교

1180등록 201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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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CGN 투데이에서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3.1 운동의 의미를 짚어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3.1 운동과 선교사’를 주제로
가장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울어주고
참담했던 100년 전 사실을 기록하고
전 세계에 이를 증언했던 선교사들을 조명합니다.

이주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3.1운동와 관련해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선교사들은
마틴, 스코필드 등 4명입니다.

3.1운동 당시
선교사들이 보여준 한국인들을 향한
애정과 공감이 컸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들은 3.1운동을 함께 모의하거나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3.1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든든한 정신적 기반의 제공자였습니다.

또, 이후 전개되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
한국인들의 대변자로, 고통의 현장을 지킨 목격자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린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1. 3.1운동 당시 선교사의 신학 정신: 에큐메니컬

선교사들은 선교현장에서의
교파의 구별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고, 교파주의를 극복한
일치와 연대의 새로운 선교신학인
‘선교 에큐메니즘’을 깨닫게 됐습니다.


3.1운동 당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이웃종교인 천도교나 불교 인사들과 함께

민족공동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손잡은 역사는
초기 내한선교사들이 보여준
에큐메니칼 선교와 실천의 모습으로 인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 중립지대에 선 선교사들: 교회를 지키기 위해 일제에 고발한 선교사

3.1운동 초기 내한선교사들은
가능한 자신들을 사건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려는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의 일반적인 정서는
한국인들의 독립시위에 공감을 하면서도,
그들의 안전을 염려하여 참여를 만류했습니다.

선교사들 가운데 스미스 목사와 같은
친일성향의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는 정교분리를
교리처럼 가르치던 선교사들의
간섭과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1 운동 당시 한국인 민족대표들과 주도자들은
선교사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했습니다.

[홍승표 박사 / 한국기독교연구소: 인터뷰]

3. 목격하고 기록하고 증언하다: 증인으로서의 선교사들

3.1운동 기간 중 가장 참혹하고 비극적인 사건으로 불린
제암리 방화 학살사건에 대해
주도적으로 조사를 촉구한 이들은
스코필드, 언더우드 등의 선교사였습니다.

제암리, 서촌리의 참혹한 소문이 서울로까지 전해지자
미국 영사관의 커티스, 언더우드,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 그리고
테일러를 포함한 미국인들은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제암리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인
4월 16일, 수원의 제암리를 찾았습니다.

이들은 일제가 교회에 대한 방화, 한국인 학살,
선교사 박해 사건 등에 대해
엄정한 조사와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를 보고서와 신문제보,
사진 등 다양한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특히 당시 선교사들이 촬영한 사진은
부인할 수 없는 근거가 됐습니다.

선교사들이 제작한 각종 기록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기록은 단순히 정보 전달을 넘어
여론의 공분을 일으킬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언더우드가 미국에 보낸 보고서에는
그 당시 생존자들과의 대화록이 생생히 기록돼 있습니다.

그는 당시 공포에 떨던 제암리 주민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며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언더우드는 제암리 사건 목격자의 진술서를 입수하고
본국에 급히 송부했고
스코필드는 3.1운동의 봉기장면을 은밀히 촬영해
해외언론에 배포했습니다.

그 때 동석했던 테일러 기자는
위의 대화 상황을 자세히 보도해
이 사건은 전 세계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에까지 알려졌습니다.

[홍승표 박사 / 한국기독교연구소: 인터뷰]

선교사들은 3.1운동의 현장을 함께 한 목격자로서
그리고 용기 있는 증언자로서 이 역사에 동참한 겁니다.

내한 선교사들과 언론인, 외교관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3.1운동 전개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자행된 잔혹상이
일부 세계 언론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파악한 진실은 일부였으며
당시 제암리교회 뿐 아니라
16개 마을과 5개 교회에서
일제에 의한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혔던 노력은
선교사들이 교회와 국가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보다 적극적인 사회선교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4. 3.1운동의 신앙정신과 그 현대적 의미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3.1운동의 선교사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체제 아래
남과 북이 화해와 평화의 길로 통일을
이루도록 헌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백걸 교수 / 백석대학교: 인터뷰]

생사를 넘어서
사랑과 평화의 길에 앞장섰던 푸른 눈의 선교사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녀야 할
3.1운동의 신앙정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CGN 투데이 이주희입니다.
fgjhlee@cg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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