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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CGN투데이 대담 <로잔운동과 한국교회>

123등록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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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전문>


주영희 아나운서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온 땅이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라’,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 복음주의 대회 로잔운동의 기치입니다. CGN투데이는 개편을 맞아 오늘부터 매우 월요일 로잔운동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한국로잔위원회 총무를 맡고 계신 서울신학대학교 최형근 교수님과 함께 로잔운동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교수님 안녕하세요.

최형근 총무 / 한국로잔위원회 :
네, 안녕하세요. 최형근입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로잔운동이 세계교회와 글로벌 선교운동에 미치는 영향력과 인지도에 비해 한국교회 안에서는 로잔운동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최 교수님 로잔운동이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최형근 총무 / 한국로잔위원회 :
로잔운동은 세계복음화 운동, 즉 세계선교를 위해 태동된 복음주의 선교운동입니다. 로잔은 스위스의 도시 이름인데, 45년 전인 1974년 제1차 로잔대회가 열렸을 때 미국의 복음전도자 빌리 그래함과 영국의 신학자이며 목회자인 존 스토트의 주도로 소집된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대회(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라는 명칭으로 인해 로잔운동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로잔운동이 시작된 계기가 있을 텐데요, 로잔운동의 배경에 대해 정리해주시죠.

최형근 총무 / 한국로잔위원회 :
로잔운동이 시작된 배경은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에큐메니컬운동인 WCC가 시작되게 되었고,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갖고 있었던 선교에 대한 이해가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경향을 띄게 됐습니다. 그것에 대해 복음주의 진영의 주도적 인물인 빌리 그래함 목사와 존 스토트 목사 등의 주도로 로잔대회를 개최하게 됐는데 사실 한국과 연관해서는 로잔 대회가 열리기 전인 1973년도 빌리그래함전도협회에서 여의도 집회를 열게 됐는데 그때 놀라운 복음전도의 열기와 선교에 대한 활력을 한국교회에 불어넣게 됐고 또한 로잔대회가 열렸던 1974년에는 EXPLO74가 열려서 한국교회 성장과 선교운동을 고취하는데 놀라운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급진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띄는 에큐메니컬 진영과의 의견 차이, 선교의 약화 이런 것들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군요.

최형근 총무 / 한국로잔위원회 :
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복음주의 진영에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주장했던 선교에 대한 이해 자체가 너무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뤄진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특별히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서구에서 수많은 선교단체들이 나오게 됐고 특별히 1960년대에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 세속적인 의제에 대한 복음주의 진영의 대응으로서 이러한 복음주의 선교운동이 나오게 됐습니다.

특별히 에큐메니칼 진영의 선교에 대한 이해로 선교의 모라토리엄(moratorium), 즉 해외에 선교사를 보낼 필요도 없고 선교사들도 현지에서 철수하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복음주의 진영에서 아주 적극적인 대응을 한 것입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복음의 씨앗을 외국 선교사로부터 받아들인 한국인의 입장에서 참 안타깝게 들리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최형근 총무 / 한국로잔위원회 :
네 그렇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1차 대회 때는 몇 명이나 참여했나요?

최형근 총무 / 한국로잔위원회 :
150개국에서 2,700명의 대표들이 참석했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한마음으로 모인 만큼 첫 대회가 열리고 많은 성과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최형근 총무 / 한국로잔위원회 :
그 당시에 2700명이 한자리에 모여 기도하고 세계 선교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의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잔운동이 나온 중요한 결과는 로잔언약입니다. 로잔언약은 성경의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에 총체적인 접근, 성령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복음을 온 땅에 듣게 하자는 기치를 걸고 놀라운 역할을 했던 것이 로잔 대회입니다. 로잔 언약은 그러한 모든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차 로잔대회가 끝난 후에 2년 지난 다음에 로잔 위원회가 설립됐는데 전 세계 복음주의 선교 운동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이 됐습니다.

또한 랄프 윈터 박사가 지상대위임령을 “종족 중심의 해석”을 제시하므로, 한국교회도 소개된 미전도 종족 개념이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로잔운동이 촉발한 중요한 공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미전도 종족 개념도 생기고 성경적인 신학적 근거도 마련하고 상당히 중요한 열매들이 맺어졌는데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어떤 대회들이 있었는지 이어서 소개해주시죠.

최형근 총무 / 한국로잔위원회 :
제1차 로잔대회 이후 로잔위원회가 설립되고 다양한 협의회들이 계속해서 선교운동을 위해 필요한 이슈들을 논의하는 작은 모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만한 대회는 1980년도 태국 파타야에서 로잔 파타야 포럼이 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세계 선교에 대한 의제를 논의하고 로잔의 주제 연구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로잔운동이 선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이어서 2차 마닐라 대회도 있었죠?

최형근 총무 / 한국로잔위원회 :
그 이후 제2차 로잔대회는 1989년 마닐라에서 열렸습니다.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자”라는 슬로건이 제정되었다. 마닐라 선언문은 로잔언약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에서 나왔습니다.

1989년이라는 해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냉전이 해소되는 중요한 해입니다. 그때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슈가 제기됐는데 특히 선교에 대한 이슈들이 제기됐습니다. 마닐라 대회에서는 그런 이슈들을 가지고 많은 문서들을 내놓습니다. 특별히 오순절, 은사주의, 많은 여성들이 참여해서 복음주의 선교 운동을 촉진하는 중요한 대회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잔운동은 케이프타운대회를 준비하게 됐는데 2010년 10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제3차 로잔대회가 열리게 됐습니다.

이 대회는 4500명의 참가자들이 참여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화해를 이루셨다는 주제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 그리고 온 교회가 온 세상에 대한 선교에 참여하자는 로잔운동의 슬로건이 더욱 폭넓게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네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로잔운동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형근 총무 / 한국로잔위원회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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