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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CGN투데이 대담 <로잔운동과 한국교회5>

116등록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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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전문>

주영희 아나운서 :
지난 시간에 케이프타운 서약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오늘은 한국로잔운동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서울신학대학교 최형근 교수님 나와 주셨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최형근 교수 :
네 안녕하세요. 최형근입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과거에는 로잔운동이 서양 위주로 흘렀잖아요. 이 운동이 아시아에 들어오게 된 과정이 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해서 들어오게 됐나요?

최형근 교수 :
1974년 제1차 로잔대회가 열린지 2년 후 미국 애틀랜타에서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LCWE)가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첫 번째 로잔위원회에 참석했던 아시아 대표들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아시아 로잔위원회를 창립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아시아 로잔위원회는 1978년 첫 아시아 로잔대회를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이래 1987년, 1992년, 1996년, 2002년, 2006년, 2011년 7회에 걸쳐 아시아 로잔대회를 개최하여 로잔신학과 로잔정신에 근거하여 아시아 선교를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아시아 로잔 지도자들의 노력은 제2차 로잔대회를 필리핀 마닐라로 유치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으며, 복음의 영향이 미치지 못했던 불교, 이슬람, 힌두교 등 세계적인 종교들과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다수를 차지했던 아시아 국가들과 종족들에게 선교의 문을 개방하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아시아의 복음화율이 높아지는데 로잔운동이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시아에 선교의 문을 개방한 로잔 운동, 한국에는 언제 들어오게 됐습니까?

최형근 교수 :
2차 마닐라 대회 때 저희 한국에서는 60여 명의 대표들을 마닐라 대회에 보냈는데 거기에서 한국 복음화를 위해 한국로잔위원회를 결성해야겠다는 의견이 이뤄지게 됐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직접 참여해보니까 필요성을 느끼신 건가요?

최형근 교수 :
제가 참여한 것은 2004년부터지만 한국에도 로잔 신학과 비전을 널리 확산해야겠다는 합의에 도달하게 돼서 조종남 박사를 비롯해서 김선도 목사, 박조준 목사, 이종윤 목사 등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에 로잔신학과 로잔의 선교적 비전을 확산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첫 의장으로 김선도 목사님께서 담당하게 됐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설립된 게 몇 년도쯤 되나요?

최형근 교수 :
1989년에 설립됐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한국로잔위원회가 설립되면서 한국에 미친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최형근 교수 :
로잔언약과 마닐라 선언문이 번역돼 소개됐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조종남 박사가 번역한 복음과 문화입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한국교회 내에 있는 많은 선교단체들과 학생선교단체들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한국로잔위원회가 또 어떤 활동들을 하셨나요?

최형근 교수 :
1987년 첫 번째 로잔 젊은 지도자 대회에 이어 2006년 말레이시아 포트딕슨에서 열린 젊은 지도자 대회에 20명의 젊은 선교 지도자들이 참석하여 한국교회의 로잔운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기 되었습니다. 3차 케이프타운 로잔대회를 앞두고 한국로잔위원회는 2009년 로잔 리더십 콘퍼런스를 서울에 유치하여 한국교회에 로잔운동을 알리는 중요한 전기를 만들었습니다. 2010년 제3차 케이프타운 로잔대회는 한국교회에 로잔운동의 신학과 정신을 본격적으로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로잔위원회에서 추천한 100명이 넘는 대표들이 케이프타운 대회에 참가하여 2010년대에 글로벌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선교적 도전들과 과제들을 확인하고 한국교회의 선교적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케이프타운 서약은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에게 복음과 세상 사이에서 하나님 백성 공동체인 교회의 정체성과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케이프타운대회의 서약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접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의 선교가 직면하는 도전 혹은 방향을 안내하는 지침이 되어주었다고 하셨는데요. 케이프타운 대회가 열린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 제기됐던 문제점, 혹은 나아갈 방향을 돌이켜보신 다면요?

최형근 교수 :
케이프타운 서약에 2부에 나온 다양한 주제 가운데 비즈니스 선교와 일터사역 전문인 선교 모든 것들이 로잔 정신을 반영하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자라는 슬로건과 부합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주제들과 이슈들이 한국교회뿐 아니라 선교단체 신학교에 파급돼서 현재 더욱 심화되는 과정에 있으며 선교단체에서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이런 이슈들을 현장에 적용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국내의 많은 유명 목회자들도 많은 문제점에 대해 로잔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형근 교수 :
특별히 여러 목사님께서 로잔운동을 보시고 로잔운동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메리트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선교에 대한 중심성, 모든 것에 대해서 한구교회를 새롭게 하고 갱신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생각합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한국로잔위원회가 중국 선교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최형근 교수 :
중요한 이야깁니다. 2010년도에 3차 케이프타운대회때 국제로잔위원회에서는 중국 대표 200여 명을 선발했습니다. 케이프타운대회에 참여하게 했지만 중국 공항에서 출국 정지를 당했습니다. 현재 중국 내부에서 선교사들에 대한 추방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아마 10년 전에도 그런 일들이 일어날 조짐을 보인 것 같습니다. 그들이 참여하지 못했고 케이프타운 대회 2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중국 대표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중국 지도자 100여 명을 한국에 초청해서 중국 지도자 모임을 가졌습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네 언젠가 중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는 그날 한국로잔위원회의 활동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올리는 그날을 꿈꿔봅니다. 교수님 오늘 잘 들었습니다.

최형근 교수 :
네 감사합니다.

주영희 아나운서 :
다음 이 시간에는 한국로잔위원회의 활동을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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