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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제3의 길, 고 강원용 목사

1890등록 200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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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 화합과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개신교계의 원로 강원용 목사는
한국 최초로 ‘대화운동’을 태동시켜 
한국사회 소통의 장을 연 큰 어른이였습니다.

지난 17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에 안겨 
한시대의 역사 속에 남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어령 / 전 문화부 장관
“강원용 목사님은 항상 한 복판에서 사신 분입니다. 
종교와 비종교인 사이, 가진 자와 안 가진 자 사이, 한국과 타국사이. 
항상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은 극과 극의 한 가운데에서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하다가 그것을 뛰어넘는 세계를 지향한다고 
말씀하시고 평생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교파나 집단 간 이견이 있을 때 ‘대화’라는 화두로 
제3의 길을 모색했던 고인의 여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많았습니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청년대표로 좌우합작운동에 뛰어들었고, 
1970년대 군부 독재 시대에는 
김수환 추기경, 함석헌 선생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교회의 거목이었던 김재준 목사를 초빙해 
경동교회를 설립해 종교 간 대화의 산실을 마련했습니다.

방송 민주화에도 앞장섰던 고인은 
김대중 정부 시절엔 대통령 직속 
방송개혁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고인은 1963년 설립한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사회운동에 전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크리스천 아카데미운동이 외치는 핵심은
하나님 사랑이 중심이 되는 화해공동체였습니다. 


[인터뷰] 박종화 목사 / 경동교회 담임
“목사로서 평생을 사셨습니다. 
목사지만 세상일에 하늘 뜻을 품고 함께하셨습니다. 
늘 생활 속에 참여하는 목회자의 모습을 평생 동안 잃지 않았습니다. 
정치현실에는 참여하시지 않았지만 정치적 사안에 관해서는 
민주화라는 대 전제하에 항상 적극적으로 동참하셨습니다.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노력하셔서 
노사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전력하셨습니다. 
사회민주화를 위해서는 양 극단 간의 화해를 취하는 
그런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종교 간에는 대화를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항상 대화 협상 화해가 목사님의 대 주제였습니다.”



이처럼 고인의 사회적 대화모임은 종교간 대화모임으로 이어져 
국내 6대 종교의 지도자들의 대화모임이 태동하고, 
이는 세계 종교 간의 대화운동으로 확산됐습니다.

또한 사회각계의 많은 인재들이 배출됐습니다.
당시 강 목사의 사랑을 접했던 한명숙 총리, 유재건 국회의원, 
신인령 전 이화여대총장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나는 한국이라는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일 뿐이라고 말한 고 강원용 목사!

하지만 그는 존경받는 목회자이면서 
시대를 앞서간 사회운동가였습니다.



[취재] 장진아 기자 janga3@onnur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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