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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래에서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702등록 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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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의 한 노예가 비밀스럽게 시작한 교회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해 5백 명 이상이 모였습니다. 역사적인 유산을 가진 이 교회가 흑인과 백인 모두를 모아 자유를 위한 종을 울립니다. 에프렘 그레이엄이 전해 드립니다.

소망과 회복을 좇아 미국 전역의 사람들이 버지니아주 윌리엄즈버그의 작은 교회를 찾았습니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240년 전, 교회가 나라가 세워지던 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일침례교회를 시작한 사람이 뜻밖의 장소인 주점에서 발견됐습니다. 1776년, 버지니아주의 주도였던 윌리엄즈버그에서는 인기 있는 모임 장소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가웬이었습니다. 그는 킹스암스 주점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노예였지만 처음으로 목사로 임명된 흑인이었습니다.

린다 로위 / 사학자
"그는 애국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패트릭 헨리, 토마스 제퍼슨,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된 버지니아 권리 장전을 선언했죠."

1776년에는 5명의 노예가 주인의 허가 없이 모이는 것이 불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일침례교회는 숲 어딘가에서 비밀리에 시작됐습니다.

린다 로위 / 사학자
"백인 사회는 노예들의 종교적인 모임을 위협으로 봤습니다. 반역을 조장하거나 노예 관계를 느슨하게 한다고 여겼어요."

역사적인 자료에서 가웬의 이름은 1779년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은 아닙니다. 지역 신문인 버지니아 가제트가 말을 훔쳤다는 혐의로 고발하는 광고를 냈습니다. 교수형을 받을 일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기소당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몇 년간, 신도들은 2백 명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1793년은 가웬에게 분수령이 되는 해였습니다. 노예 반란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았음에도 대다수 백인으로 구성된 도버 침례교 협의회에 가입했습니다. 또 이 증서에서 보이듯이 노예 신분에서 해방됐습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그의 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스스로 선택한 이름으로 '팸플릿'입니다. 그가 왜 '팸플릿'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을까요?

린다 로위 / 사학자
"생각하신 대로 큰 관심이 될만한 주제인데요. 백인이든 흑인이든 '팸플릿'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우연히 18세기의 팸플릿 모음집을 보게 되었는데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었죠. 그때 저에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가 그 이름을 선정한 이유가 다양한 주제를 알리는 팸플릿의 효과를 생각해서 그런 걸까?"

팸플릿은 윌리엄즈버그 외곽의 라쿤 체이스라는 숲이 우거진 지역에서 5백여 명의 성도를 만났습니다. 1805년에는 그들의 예배 소리를 들은 백인 이웃이 윌리엄즈버그 시내의 마차 차고를 내주었습니다. 가웬 팸플릿은 2년도 안돼 사망했습니다.

린다 로위 / 사학자
"그의 유산은 교회를 살아있게 하고, 교회가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얻기 위해서 결단하며 모든 역경에 인내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를 그림자 속에 두지 않겠다고 결단했습니다.

린다 로위 / 사학자
"교회를 공개하려고 했죠."

50년이 지나고 제일침례교회는 그들의 첫 번째 교회 건물을 헌정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종을 얻었습니다. 백 년이 지나고 1956년에 그들의 현재 건물로 이사했습니다. 하지만 종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고 곧 사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인권운동 시대에도 종은 침묵을 지켰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로사 파크 같은 운동가들을 후원했습니다. 교회는 올해 240주년을 기념해 윌리엄즈버그 재단이 5백 파운드 짜리 종의 복원을 맡았습니다. 퍼거슨, 미주리, 볼티모어, 메릴랜드에서 일어난 인종 갈등을 고려해 ' Let Freedom Ring'이라는 국가적인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2월 한 달 동안, '자유를 위해 종을 울리라'는 캠페인에 참여하도록 모든 인종의 미국인을 초대했습니다. 오늘의 기념식으로 초청했습니다.

레지날드 데이비스 목사
"우리는 종을 울리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분열의 영과 우리가 한 나라임을 잊어버리게 하는 행위를 내쫓기 위해 모였습니다. 하나님 아래에서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자유와 정의가 모두에게 있습니다."

한 가족이 첫 번째로 종을 울렸습니다. 인종 간 화합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토마스 제퍼슨의 아내 마사와 노예였던 샐리 헤밍스의 후손입니다.

섀넌 라니에 / 토마스 제퍼슨의 후손
"강렬한 순간이었어요. 성령이 움직이시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교회 안에 소망과 에너지가 넘쳤어요."

데이비드 웍스 / 토마스 제퍼슨의 후손
"그 선을 넘으면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알게 돼요. 그들의 입장이 됩니다. 그리고 나누어져 있는 것보단 함께 하는 게 낫다는 걸 알게 되죠."

제시 잭슨 목사 / 인권 운동가
"흑인과 백인이 함께 모여 일치점을 찾는 것이 오늘의 가장 큰 도전입니다. 어떻게 하면 인종 전쟁에서 경제적 공통의 장이나 더 도덕적인 쪽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요?"

이틀 후, 종을 울리는 사람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작은 교회의 고장 난 종이 어떻게 해서 국가적인 운동이 됐을까요?

레지날드 데이비스 목사
"종을 고치고 우리나라의 배경을 돌아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새로운 시작을 일으키자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나라의 탄생이 있었고, 노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가 됐죠 하나의 미국을 원했으니까요. 종을 고치고 이 나라를 위대하게 만든 그 원리와 가치에 헌신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데이비스 목사는 월요일마다 가족과 함께 종을 울렸습니다.

레지날드 데이비스 목사
"과거와의 연결점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제 자신에게 약속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를 위해 고통받고, 피 흘리고, 죽어갔던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하겠다고요."

저는 97세가 되신 저의 할머니와 조상들을 위해 종을 울립니다. 저의 삶을 있게 하신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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