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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베트남 '보트피플', 지금은?

825등록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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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후, 말레이시아 국경 수비대가 청 가족을 다시 배에 태워 바다까지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어떤 섬에 있는 난민 캠프에 간다고 말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땅이 보이지 않자, 말레이시아 군대는 줄을 끊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시작됐습니다. 계속해서 보시겠습니다.

빈 청
"우리는 배신당했고 속았습니다. 우리는 죽도록 방치됐습니다. 우리를 난민 캠프에 받아주지 싶지 않았던 거죠. 그렇다고 우리를 죽일 수도 없었습니다. 대신, 간접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그들의 해변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죽음만이 예상되는 결과인 그런 환경에 처하게 했습니다."

사람의 몸은 1~2%의 수분만 잃어도 탈수증이 시작됩니다. 7월 중순, 남중국해를 표류하던 빈과 그의 가족은 하루 만에 탈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5일이 지나고 난민들에게 죽음이 임박했습니다.

빈 청
"우리에게는 식량도, 물도 없었어요. 각막이 타버려서 눈이 먼 사람이 있었습니다. 환각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의 할머니도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여자는 아이들을 바다에 익사시킬 생각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거죠. 저의 아버지 역시 자식들과 가족이 죽어가는 걸 보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창조주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구름이 몰려오고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비는 당장의 생존에는 도움이 됐지만 계속해서 살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난민들에게 또 다른 기적이 필요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들의 기적은 겨우 몇 마일 떨어져 있었습니다.

빈 청
"하얗고 큰 배를 봤어요. 해적선일 수도 있었지만 절실한 나머지 상관없었어요. 어른들이 다들 누우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픈 것처럼 보여서 그 배의 사람들에게 동정을 사려고 했어요. 아프고 절박해 보이려고 그랬다니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죠. 그때 우리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는데요."

그 일이 일어나기 2년 전, 월드비전의 스탠 무니헴 회장은 오래된 화물선을 사서 망망대해를 난민을 찾아 샅샅이 훑었습니다. 그는 이 활동을 ' Seasweep' 작전이라고 불렀습니다. 1979년 7월 9일, ' Seasweep'이 해변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빈과 반쯤 죽어가는 그의 가족을 발견했습니다.

스탠 무니헴 / 월드비전
"마치 정어리처럼 들어차 있어요. 정말 말 그대로 빼곡히 들어찼어요."

난민들은 배에 옮겨 탔고 음식과 담요 그리고 성경을 받았습니다. 빈의 아버지는 선원들이 드리는 예배에 초대받았습니다.

빈 청
"그때 아버지는 비를 내려서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 하나님이 이 하나님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미 카터 대통령이 미국 국적의 배가 구조한 난민은 미국으로의 망명을 보장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구조되고 몇 달이 지나 빈과 그의 가족은 아칸소 주, 포트스미스의 새로운 집에 도착했습니다. 빈의 가족들은 그들에게 맞는 장소를 찾았습니다. 베트남어 예배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빈의 가족은 교회에 다니기로 결정했고 그들이 보는 걸 믿을 수 없었습니다.

빈 청
"어머니가 교회에서 예수님의 그림을 보게 됐어요. 그림의 사람은 어머니가 꿈속에서 봤던 사람이었어요. 그의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그의 가족은 미국에서의 기회를 최대한 이용했습니다. 빈의 아버지는 열 명의 가족을 위해 장시간 일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빈은 의사가 되기 위해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베트남으로 돌아갔습니다. 빈은 피난을 떠나지 못 했던 사촌과 친척들을 만났습니다.

빈 청
"놀라웠던 것은 누가복음 12장 48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그 말씀이 저에게 적용될 줄 몰랐어요. 예수님이 부자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권력자 또는 줄 것이 많은 사람을 이야기하시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제가 베트남에 갔을 때, 많고 적음을 떠나서 우리가 가진 것을 돌아보게 됐어요. 우리가 받은 것들이죠."

빈은 옷만 걸친 채 미국에 왔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열심히 일했고 이제 그 호의에 보답해야 합니다.

빈 청
"저의 의무는 필요한 이들에게 그 보트를 다시 돌려보내는 겁니다."

빈 청은 현재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살고 있습니다. 피부과 전문의로 개인 병원을 운영합니다. 또 월드비전의 이사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30년 전, 그의 생명을 살렸던 그 단체입니다. 그리고 두 대륙 사이, 만 마일을 건너서 집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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