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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리포트

천안문 지나 참 자유를 얻다

1232등록 201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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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링에게 자유를 향한 긴 행군은 20년이 훌쩍 넘게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영적 자유를 얻은 미국 땅에서 비로소 끝을 맺은 겁니다

1989년 천안문 광장을 가득 메운 학생 운동에서 리더로 나서면서 여정은 시작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중국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차이 링

"정말로 굉장한 움직임이었어요

사람들이 껍질을 깨고 나와 서로 함께 하며 삶과 기쁨, 사랑을 만끽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동료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탱크가 시위를 막고 수천 명의 젊은이가 사망했을 때였습니다


차이 링

"6월 4일 밤에 탱크와 군병력이 투입됐죠

천안문 광장에 있던 저는 믿을 수 없었어요

박애와 배려, 무폭력의 시간이 잔인한 탱크며 군대와 조우하게 된 거죠

죽음은 더 이상 교과서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실제였고 한 발짝씩 우리에게 다가왔지요"


참극 가운데에서도 학생들의 심장은 사랑으로 가득했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차이 링

"그 학살을 명령한 지도자들도 이해하려 했죠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들까지 감싸는 심정이었어요"


차이 링은 겨우 탈출했지만 상자를 통해 중국을 탈출할 때까지 정부 당국의 수색 대상자였습니다


차이 링

"요주의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어요

저는 중국을 떠나야만 했지요

짐짝에 숨은 채로 말이죠

8시간 정도면 될 줄 알았지만 더 걸렸어요"


20년간 그녀는 미국에서 살았지만 영적으론 아직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으로 자행되는 낙태 문제로 미 의회 공청회에 참석할 때까지 말입니다


차이 링

"20년 전 벌어진 천안문 사태를 애도하며 제가 깨닫지 못했던 것은 천안문 사태가 매일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사회에서 가장 다치기 쉬운 계층인 여성과 아이를 상대로 한 한 자녀 정책 때문이었죠"

 

그것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필사적으로 붙들었습니다


차이 링

"제 사무실 구석에서 무릎을 꿇었어요

거기서 하나님을 제 마음에 모셨지요

삶을 주관해 주시고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이제 저는 자유로워요

마침내 집을 찾은 느낌이죠"


이제 그녀는 중국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한 자녀 정책을 폐기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차이 링

"매일 중국에서는 35,000건의 낙태가 자행돼요

이건 반드시 끝내야 할 비극입니다

이 범죄에 하나님께서도 노하실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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