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18일, 말라티아의 성경 인쇄소에서 3명의 기독교인이 의자에 묶여 고문당하고 반복해서 찔렸습니다. 그들의 목은 길게 베어졌습니다. 1년이 지나고 수산 게스케가 남편이 사망한 날은 그저 또 다른 추모의 날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산 게스케
“사실, 날마다 4월 18일이에요. 그가 없는 매일을 살아야 해요.”
5명의 용의자가 재판을 받았습니다. 4년이 지났지만 아무도 판결을 받지 않았습니다. 말라티아 사건 이후 곧바로 교회 출석률이 낮아졌습니다. 교회는 다시 한번 성장하고 있지만 기독교인에 대한 사건 역시 증가합니다. 터키의 개신교 교회들은 2011년에 일어난 12번의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무슬림에게 신앙을 전하고 두들겨 맞는 기독교인을 포함합니다. 이에 대해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가 터키를 특별 감시국가에 올렸습니다. 위원 중 하나인 니나 시아는 이런 움직임을 지지하며 터키 정부가 기독교를 억압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니나 시아 / 허드슨 연구소
“터키 전체 인구의 0.15%입니다. 아주 약한 상태입니다. 터키가 빽빽한 규제를 없애고 종교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시대에 그들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워싱턴 주재 터키 대사는 특별 감시국가 지정은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독교인은 터키 정부가 무슬림이 아닌 사람에 대한 편협 행위에 조치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중동 분석가 와리드 페레스는 놀라지 않습니다. 그는 에르도간 터키 총리가 터키 사회를 이슬람화하고 있으며 친나토, 친서구의 위치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와리드 페레스 / 중동 분석가
“친이슬람적이며 서구에 대항합니다. 하마스와 연대가 그 예입니다.”
이 연대로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냉각됐고 가자로 향하는 테러 단체의 소함대와 총격전을 벌였습니다. 또 터키는 리비아에서 반카다피 혁명을 지지했고 최근에는 시리아의 반군을 지원했습니다. 터키는 스스로 중동 권력의 지배자라는 위치로 향하고 있습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미래를 만들어가는데 중심 역할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터키는 대부분의 미국인처럼 터키의 관심은 한 가지에 있습니다. 경제입니다. 18세~24세 사이의 터키인 25%가 실업자입니다.
모하메드 알리 / 실직자
“이스라엘과 시리아에 관한 관심이 터키의 경제에 영향을 끼쳐요. 전처럼 직업이 많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에요.”
술래이만 / 실직자
“터키는 내부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이스라엘과 시리아에 집중해야 해요.”
대부분의 터키인이 더 열리고 세속적인 사회를 즐기고 있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로의 변화에 놀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나라에는 서구 문화를 포용했다가 결국 거부해온 긴 역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성당이 그렇습니다. 이 성당은 천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대성당이었습니다. 1453년에 오스만 무슬림이 이 도시를 점령했고 대성당을 이슬람교사원으로 고쳤습니다. 여기에 있는 예수의 모자이크처럼 12세기 비잔틴 모자이크 위에 회반죽을 발랐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칼리프 체제를 수립했습니다. 1920년대에 무스타파 아타투르크가 비종교 국가로 설립했습니다. 거의 백 년이 지났고 터키는 다시 서구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에르도간 총리는 칼리프 제도를 재설립하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와리드 페레스 / 중동 분석가
“새로운 칼리프가 세워질 것이지만 그 칼리프를 누가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싸움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몇 세기 전으로 돌아가겠죠. 아랍인 칼리프가 될까요. 아니면 오스만 칼리프가 될까요? 출발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한편 모하메드와 술래이만 같은 터키의 젊은이들이 밝은 미래를 찾는 것처럼 터키의 기독교인은 더 많은 종교의 자유와 관용을 위해 기도합니다.
모하메드 알리 / 실직자
“우리에게는 직업과 평화가 필요해요.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