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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정치인에서 전도자로

767등록 201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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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웬델 콜슨은 1931년 10월 16일,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대공황 시절에 어린아이였습니다.

 

척 콜슨 / 국제 교도소 선교회
“힘들었어요. 가난에 익숙해졌죠.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우리가 가난한지도 몰랐어요. 아버지는 밤에 학교에 가셨죠. 열심히 일해서 일주일에 32달러를 벌었어요. 우리만큼 벌지 못하는 도움이 필요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눴죠.”

 

콜슨은 그런 겸손한 출발에도 브라운 대학교에 진학했고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법학학위를 땄습니다. 미국 해병대에서 대위로 복무하고 닉슨 정부 때 백악관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촉망받는 앞날에 불길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콜슨은 곧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닉슨 대통령의 악명 높은 처리 담당자로 체포됐습니다. 1973년, 혼란의 한가운데서 콝슨은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기독교인이 됐습니다. 그는 1974년에 기소됐습니다. 그의 회심 소식이 언론에 유출되자 보스턴 글로브는 콜슨이 그의 죄를 회개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콜슨은 정치적인 더러운 속임수와 대통령과 당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인정했습니다.

 

척 콜슨 / 국제 교도소 선교회
“저는 모든 것을 빼앗겼었죠. 공공의 적이었고 교도소에 수용됐습니다.”

 

앨라배마의 맥스웰 교도소에서 몇 달간을 복역했습니다. 그가 자유를 향해 나올 때 남겨져 있는 동료 재소자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수년간 700Club에서 그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척 콜슨 / 국제 교도소 선교회
“그 일을 겪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요. 교도소의 사람들을 위해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있거든요.”

 

그 짐이 콜슨을 교도소 선교회를 설립하게 했습니다. 국제단체이며 100개 이상의 나라에서 일합니다. 교도소 개선과 재소자의 재활을 위해 일합니다.

 

척 콜슨 / 국제 교도소 선교회
“재소자 수가 넘쳐나고 범죄율이 급상승한다면 우리가 범죄의 근본 이유를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저 감옥에 가두고 짐승처럼 대하고는 다시 돌아와서 재활하기를 기대하죠.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삶을 드리는 겁니다.”

 

콜슨은 대중문화의 다작하는 해설자가 됐습니다. 30권 이상의 책을 썼고 5백만 권 이상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인기 있는 강연자였습니다. 그는 때때로 책에서 기독교 세계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척 콜슨 / 국제 교도소 선교회
“그저 성소에 앉아서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손뼉 치며 스스로에 대해 좋게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세계와 접촉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해야만 합니다.”

 

척 콜슨에게 중요했던 단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받은 은혜로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척 콜슨 / 국제 교도소 선교회
“저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삽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 수 있으니까요. 오늘 제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기 위해 하는 거에요. 그 일이 당신을 완전하게 하느냐고요. 그렇다고 장담합니다. 삶에 기쁨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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