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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리포트

이라크의 미래를 찾아주세요

610등록 20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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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이라크 교회가 정부가 아닌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테러 공격으로 37명의 기독교인이 숨졌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많은 이라크 기독교인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마음만은 박해받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하는 한 이라크 기독교인의 이야기를 존 제섭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아씰 알바나는 항상 밝고 낙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성격과 달리 그녀의 어린 시절 기억은 전쟁의 어두운 그늘로 얼룩져 있습니다.

아씰 알바나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죠. 저의 미래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녀와 가족들은 전쟁이 끝이 없어 보이던 1991년에 바그다드를 떠났습니다. 10년 가까이 이어진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시작됐을 당시, 그녀는 10살이었습니다. 그리고 19살이 됐을 때 미군이 사막의 폭풍 작전을 시행했습니다. 요르단에 피난한 지 한 달 후, 그녀는 항상 가보리라고 꿈꿨던 나라로 가자고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아씰 알바나
"아버지에게 빌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제발 미국 대사관으로 가요. 시도라도 해봐요.' 저에게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자유 없이 자랐으니까요. 정말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켄터키의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왕복 티켓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모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고 사담 후세인의 독재 정권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씰 알바나
"이모가 아버지께 말했어요. '이 아이를 절대 당신과 함께 돌려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는 이 아이는 내 딸이라며 무슨 말을 하느냐고 했죠."

아씰의 이모는 그녀가 켄터키 대학의 건축학과에 입학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녀는 졸업했고 디자인 일을 시작하면 잘 지냈습니다. 날마다 더 미국인이 되어감을 느꼈습니다.

아씰 알바나
"저는 이라크인입니다. 하지만 미국인이 됐습니다. 미국인으로 성장했죠."

그리고 최근에 열린 222번째 권리 장전 기념일에 워싱턴 D.C의 국가기록보관소에서 독립선언문에 둘러싸여 서약을 하고 미국 시민이 됐습니다.

아씰 알바나
"이민자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이 나라가 참 대단합니다. 때때로 이 과정을 서둘러 처리하려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저에게는 성장의 기회가 됐기 때문에 오늘은 계약 체결이라도 하는 기분입니다."

그녀는 여전히 고향 이라크와 이라크인을 깊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동에서 기독교인 박해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에 그녀의 소망이 희미해졌습니다.

아씰 알바나
"솔직히, 미래가 보이지 않아요.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씰은 이라크 기독교인입니다. 이라크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공동체입니다.

아씰 알바나
"정직하고 합당한 공동체입니다. 이라크에 많은 것을 주었죠."

하지만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고 기독교인은 쉬운 표적이 됐습니다. 박해와 고문을 당하고 살해당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매일같이 이어지는 망명에 이라크를 집이라고 부르던 백만여 명의 기독교인들 중 1/3만이 남았습니다.

카트리나 란토스 스웨트
"고대의 역사적인 기독교 공동체가 이전에도 없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시리아와 이집트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불안으로 고대의 기독교 공동체가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중동의 기독교인이 멸종 위기에 처하자 인권 운동가들은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아씰은 다른 이들도 그녀의 여정처럼 평화와 자유를 찾고 개인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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