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콜롬비아 정글 상공에서 미국 민간업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엔진고장을 일으킵니다
정보 분석가였던 마크 곤살베스는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하나님께 외칩니다
마크 곤살베스
"제가 말했던 것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살아남으면 여차여차 하겠으니 도와주세요'
마치 협상이라도 하는 듯이 말입니다
포로가 되기 전에 크리스천이기는 했지만 제자리를 못 찾은 상태였지요
기도도 하지 않고 교회도 가지 않았지만 하나님만은 믿었습니다
말하자면 믿기는 했지만 길을 잃었다고나 할까요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 거죠"
하나님이 그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줬다는 겁니다
비행기 추락에서는 살아남았지만 FARC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고난은 '탈출'이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5년 반 동안의 포로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요?
마크 곤살베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거였죠
다시는 아이들을 볼 수 없을 거라는 것이 가장 두려웠죠
목소리들 듣고 만져보고 그냥 보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습니다
또 하나는 내가 없을 동안 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금생활이 삼 년째 접어들면서 이런 걱정이 더 심해졌습니다
다른 미국인들은 가족들로부터 소식이 계속 오는 반면 마크 부인 셰인으로부터는 소식이 중단되었다 합니다
책에서 어느 순간 부인이 이사간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요
정말 가슴 아팠겠군요
마크 곤살베스
"정말 힘들었죠
그녀 입장이 이해가 갔습니다
저의 생사 여부도 알 수 없었고요
없어진 지 몇 년이나 되었고 3명의 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으니까요
삶은 계속 되어야 하지만 제가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마크는 이 포로생활에서 살아나리라 기대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바로 콜롬비아군 군용기가 적진에 폭격을 가하면서 마크가 3평방미터 정도의 박스 안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마크 곤살베스
"저는 육체적으로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우리를 보호해달라고 그저 외쳤습니다
그러자 정말 그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양손으로 이렇게 둘러싸서 제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요
다음날 일어나니까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주께서 날 다시 구원해주고 육체적 삶을 구해주셨다고 느꼈습니다
바로 그 때 '이 모든 것을 이겨내겠구나' 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 이후 마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욕구가 생겼습니다
마크 곤살베스
"그 전에도 언제든지 성경이 가까이 있었지만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더 알고 싶었고 정말 목말랐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기적을, 성경을 보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영어-스페인어 성경이 생긴 거예요
그때부터 그저 읽고 또 읽고 했습니다"
한 콜롬비아 인질이 그 성경을 준 것입니다
마크는 동료인질 잉그리드 베탕쿠르와 함께 성경과 신앙을 자주 논의했습니다
그녀는 2002년 콜롬비아 대선에 나섰다가 유괴된 프랑스계 콜롬비아 여성이었습니다
관대하고 인간적인 믿음의 여성이었습니다
마크 곤살베스
"같이 앉아서 성경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곤 했어요
그녀나 저나 달리 그렇게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곤살베스는 호웨스, 스탄셀, 베탕쿠르를 포함한 14명과 함께 2008년 6월 2일 구조되었습니다
구호요원으로 위장한 콜롬비아 특공대에게 이들을 넘겨준 것입니다
이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크는 선물 받은 로드킹 모터사이클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동료 포로들과 함께 떠나는 전국 모토사이클 여행을 계획 중입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그는 확실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콜롬비아 포로생활로 그가 변화되었다는 겁니다
마크 곤살베스
"저는 정신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었고 몇 년간은 육체적으로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은 정신적으로 살아있습니다
하나님은 양팔을 벌려 절 받아주셨어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이땅에서 5-6년을 보냈어야 한다면 이러한 역사를 허락하신 것에 대해 저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