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오라데아의 거리는
러시아워로 북적거립니다
직장과 학교로 가는
사람들의 매일의 모습이
신생 민주주의의
자유를 보여줍니다
당신의 조국, 루마니아를
어떤 나라라고 말하겠어요?
[인터뷰] 마리안 자하리아 / 루마니아 시민
슬픈 국민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에요
그 슬픔은 루마니아의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역사에 기인합니다
공산주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이 동유럽국가를 20년 넘게 통치했습니다
[인터뷰] 마리안 자하리아
저는 그 공포의 느낌을 기억해요
먹을 것이 없었던 것도 기억나요
[인터뷰] 단 이안쿠 / 루마니아 시민
그는 “우리의 공급자” 혹은
“우리의 아버지”라 불리길 좋아했어요
거의 하나님 같았죠
[인터뷰] 티터스 팝 / 루마니아 시민
그들은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했어요
티터스 팝은 차우셰스쿠
통치 시대에 어린이였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 부모의 자녀로서
독재정권으로 인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가족의 믿음 때문에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벌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티터스 팝
한 선생님이 있었는데
역사 수업 시간마다 저를 일으켜 세웠어요
때로는 저를 구타하기도 했지만
몇 번뿐이었어요
또 고등학교 진학이
허락되지 않을 것이고
8학년에서 교육이
끝날 것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티터스 팝
[인터뷰]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셔서
제가 8학년을 마쳤을 때
혁명이 일어났어요
제가 8학년일 때 말이에요
1989년 12월 16일에
루마니아 국민은
티미쇼아라에 있는
중앙 광장에 운집해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계신다
하나님은 계신다!”
군대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외침과
공산주의에 대한 항의는
7일간 계속되었습니다
[인터뷰] 트래이안 오르반 / '루마니아 혁명 기념관'
혁명 이틀째인 12월 17일에
저는 자유광장에 있었어요
트래이안 오르반은 45세의 수의사였고
광장을 메운 수천 명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무고한 어린이들을 보호하려다
다리에 두 발의 총상을 당했습니다
[인터뷰] 트래이안 오르반
지금 저는 분노하지 않았고 행복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뭔가 하려고
모였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뭔가 보여줬어요
오르반은 그 7일간의 기억으로
티미쇼아라 혁명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의 삶이 혁명 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때 그리스도를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트래이안 오르반
저는 이제 스무 살이에요
그때 제 삶이 변화됐으니까요
파격적인 변화였어요
지금도 자유광장에서는
건물에 난 탄흔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눈에 띄는 것은
분수, 패스트푸드 식당,
자유롭게 걷는 시민들입니다
그리고 두려움 없이
예배드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튜더 페탄 / '알파 오메가 텔레비전'
1989년 12월의 그 한 주 동안
사람들이 서로 외쳤어요
“오늘은 티미쇼아라에서,
내일은 전국에서!”
튜더 페탄은 그의 나라와 동유럽 전체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1994년에
알파 오메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지금은 24시간
크리스천 방송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일어난 혁명이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인터뷰] 튜더 페탄
공산정권에 대항한 혁명은 이 도시
티미쇼아라에서 시작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은 티미쇼아라를
루마니아의 영적 수도로 생각해요
티미쇼아라는 혁명의 상징이고
자유의 상징이에요
자유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혁명으로 티터스 팝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 진학까지 했습니다
이제 그는 목사가 되어
루마니아의 한때 잊혀졌던
집시들에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티터스 팝 목사
하나님의 은혜로 저를
여기에 부르셔서 매우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