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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를 이끈 예수님의 가족들

779등록 201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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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1세기, 예루살렘의 나사렛 예수는 이단자로 몰려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아내와 자녀는 없었지만 남겨진 가족이 있었습니다. 형제들과 사촌, 종손이 있었습니다. 고든 로버슨이 전해 드립니다.

▶리포트◀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하던 시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그를 유대인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그의 친형제들이었습니다.

폴 메이어 교수
“어느 날 형이 집에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가족 여러분,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당신은 어떻겠습니까? 전화번호부에서 정신과의사의 번호를 찾지 않겠습니까? 그가 말한 것처럼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미쳤다고 하겠죠. 그렇게 해야 전화번호부를 치우고 믿게 될 겁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형제들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부활의 가장 간단한 증거 중 하나는 야고보의 개심입니다. 그의 형제가 살아있을 때는 그를 믿지 않았었죠. 하지만 예수께서 부활 후에 야고보에게 나타났고 더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됐고 결국에는 신약의 한 책을 썼습니다.”

야고보는 유대인 회당 내에서도 유명한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폴 메이어 교수
“그는 ‘의인 야고보’라고 불렸습니다. 거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유대주의와 기독교 간의 아름다운 연결 고리입니다. 그는 ‘늙은 낙타 무릎’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무릎을 많이 꿇어서 낙타의 무릎처럼 울퉁불퉁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은 야고보를 예루살렘 교회의 주교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초대교회를 이끌었고 이방인을 유대교로 강제 개종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폴 메이어 교수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당시에 그런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기독교 교회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살아남았지만 야고보는 그의 형제가 그랬던 것처럼 폭력적인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폴 메이어 교수
“야고보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사제들과도 교제했는데 그를 이용해 기독교를 모욕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사원으로 불러서 예수님을 부인하라고 하죠. 그는 대신 예수님을 변호하고 다가올 영적인 통치를 바라봤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야고보를 사원 밖으로 밀어서 떨어트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살아 있었고 한 세탁업자가 나서서 빨래를 두들길 때 사용하는 곤봉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쳐 죽게 했습니다.”

이곳이 야고보가 죽은 장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지도자 없이 남겨졌습니다. 그래서 지역의 신앙인들이 모여 새로운 주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예수님의 가족에서 지도자를 세우자고 결정했습니다.

폴 메이어 교수
“두 번째 주교는 예수님의 사촌, 시므온 또는 시몬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드리죠. 요셉에게 글로바라는 이름의 동생이 있었고 글로바에게는 시므온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글로바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 예수님과 동행했던 두 사람 중 하나입니다. 초대교회의 저자들은 이 사람이 목수 요셉의 형제였다고 기록합니다. 그가 예수님의 삼촌이라는 뜻입니다.

폴 메이어 교수
“글로바에게 시므온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촌이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두 번째 주교가 됐습니다.”

시므온은 서기 66년에 예루살렘의 주교가 됐습니다. 로마와 유대인 사이의 전쟁이 막 시작돼 예수께서 30년 전에 예언했던대로 도시가 포위당한 상태였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누가복음 21:20-21)

시므온은 사촌의 말을 기억했고 도시를 떠날 적당한 때를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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