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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선교130주년, 선교사의 발자국> 한 알의 밀알 한국땅에 떨어지다.

1325등록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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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민족의 주권도 언어도 상실한 채
암울하기만 했던 일제강점기.

미국의 선교사들보다
3.1운동에 더 적극적이었던 건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캐나다선교사들 이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해방 전까지
캐나다 선교사 100명이 이 땅을 찾아 왔습니다.
여기엔 한 알의 밀알이 돼 죽어간
한 청년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선교 130주년 보도특집
선교사의 발자국'
오늘은 그 네 번째 시간으로
윌리엄 존 멕켄지 선교사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리포트]

1893년 12월, 엄동설한보다 더 모질고 차갑던...
복음의 불모지, 조선 제물포 항에
한 낯선 캐나다인이 상륙합니다.

캐나다 동부에서도 멀리 떨어진 라브라도라는 시골 마을에서
개척 전도를 하던 윌리엄 존 멕켄지.

그는 재정이 여의치 않았던 캐나다 선교부가
한국 선교 지원을 거절하자
뜻을 굽히지 않고 혈혈단신 조선을 찾아옵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두 살.
친구들이 모아 준 쌈짓돈이 그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인터뷰] 이덕주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한국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던 분이죠.
다른 선교사들이 보기엔 무모할 정도로 열약한 시골, 황해도 소래로 바로 내려가는 거예요.
서상윤, 서경조 두 형제가 복음을 전해서 이미 신앙 공동체가 형성돼 있었거든요.
그 속에 들어가서 서양식 집 짓지 않고 한국 토담집에서
한국 사람들이 먹는 음식 먹으면서 한국말도 배우고 복음을 전했던 거죠.


초가집에서 한복을 입고 짚신을 신고 김치를 먹으며
뼛속까지 조선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는

어느 해 성탄절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보낸
케이크, 과일 등의 음식과 의복마저
하나도 취하지 않고 교인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는 1894년, 평신도에 의해 한국 최초로 세워진
소래교회의 초대 목사로 부임해
솔내 교회를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피투성이가 된 동학군까지 품었습니다.

외세의 침투에 분노해 들고 일어났던 동학군 지도자들마저
솔내를 지나갈 때면...
맥켄지 선교사를 찾았던 걸 보면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고 따랐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을 가장 한국인다운 방법으로 사랑했던 멕켄지 선교사.
결국 풍토병으로 고생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한국에 온지 1년 반,
솔내에 온지 10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유일의 소망입니다. 어머니,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너무 아픕니다. 어머니”


한국식으로 살다 죽게 됐다는 말을 그토록 싫어했던 그가
끊기고 흩어지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혼신을 다해 썼던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맥켄지 선교사는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쳤지만
그를 잊지 못한 솔내 사람들이
맥켄지와 같은 사람을 보내달라는 청원서를
캐나다 장로교 총회로 보냅니다.

[인터뷰] 이덕주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요청서한이 날아오니까 캐나다선교부가 그 후 100여명의 선교사들을
해방될 때까지 파견하는 거죠.
이 분을 캐나다 선교회에서는 한 알의 밀알이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었으니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


독립운동가 이동휘와 함께
조선을 식민지 노예에서 해방시키려 힘썼던 그리어슨.

용정에서 거행할 독립선언과 시위 상황을
북경주재 미국공사와 상해에 있는 외국인 기독교선교사회에
목숨을 걸고 알렸던 스코트.

일본군의 만행과 독립군의 활동상을 사진으로 찍어
서울선교사회와 캐나다 선교본부로 보냈던 베이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독일 오스트리아군의 패전으로
소수민족들이 독립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한국교회에 알렸던 캐나다 장로교회의 선교사들.

한국인을 사랑했던 캐나다 선교사들의 헌신 뒤에는
한 알의 밀알이 돼 썩어졌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솔내 교회는 조선의 처음 열매요. 목사의 몸은 여기서 자도다”
맥켄지 선교사의 약혼녀 맥컬리가
맥켄지 선교사의 비석에 써낸 마지막 글귀입니다.

우월감이나 편견 없이
한 알의 밀알이 된 멕켄지의 한국 사랑이
비오는 날 우산을 나눠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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