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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한국에 떨어진 꽃, 조세핀 캠벨 선교사

1298등록 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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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여자는 쓰개치마를 쓰지 않으면
외출도 할 수 없었던 구한말에
여성교육을 위해 세워진 배화학당.

1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여성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는데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한국 여성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조세핀 캠벨 선교사의 삶과 업적을 돌아봅니다.

<리포트>
군데군데 깨진 기와장과 색 바랜 벽돌...
117년 역사의 흔적이 엿보이는 이곳은
미국 남감리교회의 1호 선교사로 한국을 찾아온
조세핀 캠벨, 강모인 선교사가 세운 배화학당입니다.

시작은 학생 6명이 전부였지만
이제 배화 중. 고등학교 졸업생만 5만 명이 넘습니다.

1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민족의 개화기, 일제강점기 3.1운동, 6.25와 4.19 혁명 등...
나라의 시련과 함께 맞섰고
지금까지도 믿음, 소망, 사랑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교훈과 이념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환옥 교장/배화여자고등학교

근대 여성 교육의 산실이 된 배화.
학교 곳곳에 켐벨 선교사의 사랑과 헌신이 녹아있습니다.

1852년 4월 미국 남부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녀가
처음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마음먹은 건
그녀에게 닥친 불운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이덕주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이 분은 본래 미국 시카고에서 간호학교,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목사님과 결혼해요.
캠벨은 남편의 성이죠. 그런데 결혼해서 얼마 안 돼 30대 초반에 남편이 죽어요.
그래서 혼자 미망인이 되죠.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도 죽어요.
미국에서 불행한 삶을 경험한 분이죠. 이런 상황에서 해외 선교를 결심해요.

남편과 두 아이를 모두 잃고 미망인이 된 켐벨 선교사.
처음 중국에서 사역을 시작했던 그녀가 한국 땅을 밟았을 때는
이미 불혹을 훌쩍 넘긴 중년이었습니다.

인터뷰 - 이덕주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1895년부터 미국 남감리교가 한국 선교를 시작합니다.
이 때 서울에서 여학교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14년 정도 됐으면 그 선교지에 익숙해져요.
환경도 음식도 이제 좀 몸에 맞는 거죠. 그런데 그 때 한국을 나온 거예요.
45세 나이에 한국에 나와서 또 새로 시작하는 거예요.

‘나의 빈손을 하나님을 위해 채우소서’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은 슬픔 속에서
더 강인한 믿음을 보여준 그녀는
중국에서 양녀로 삼은 여도라라는 중국 여성과 함께
한국인의 굳어진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녹여 나갔습니다.

남존여비사상과 봉건주의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캠벨 선교사는 전도부인을 양성해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매사에 한국인을 먼저 세우고 존중했던 그녀였습니다.

한국 여성들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던 캠벨 선교사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결국 한국을 잊지 못해 병든 몸을 이끌고 다시 찾아와
이 땅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인터뷰] 이덕주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인터뷰] 황은비 학생/배화여자고등학교

‘꽃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듯
이 땅에 떨어진 한 여인의 헌신이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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