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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130주년, 선교사의 발자국> 생명책을 옮겨준 사람, 레이놀즈

1112등록 201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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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멘트 ▶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의 번역은
초기 선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요.

선교 130주년 보도특집, 선교사의 발자국.
오늘은 능통한 히브리어로 한글 성성번역을 이끌었던
레이놀즈 선교사의 삶을 돌아봅니다.

◀ 리포트 ▶

선교사들에겐 미지의 세계나 다름이 없었던 조선.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내한하기 전
이미 성경이 전국 곳곳에 배포되면서
이 땅에 주체적인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만주에서 번역된 로스역 한글 성경과
일본에서 번역된 이수정역 성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서민층 전도를 위해서라도
당시 순 한글 성경은 필수였던 상황.

기존의 번역 성경에 아쉬움을 느낀 선교사들은
<로스역...평안도 사투리, 이수정역...단편에 불과>
1887년 성경번역위원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번역 사업에 착수합니다.

이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1867년 12월 11일 미국 버지니아 주 노포크에서 태어난
윌리엄 레이놀즈입니다.

어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히브리어, 라틴어, 불어 독어 등을 익혔고
그것이 훗날 성서번역의 초석이 됐습니다.

버지니아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조선에 큰 관심을 갖게 된 레이놀즈.

매일 3시에 기숙사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마음을 다해 기도한 끝에
당시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았던
미국 남 장로회 최초의 개척 선교사가 됐습니다.

[이용민 연구이사/한국기독교역사학회 : 윤치호선생이 유학중일 때 언더우드와 같이 남 장로회 선교사들의 모임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부터 미국 남장로회가 한국 선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관련된 자료를 읽고 공부하면서 테이트와 그의 여동생 메티 테이트, 레이놀즈와 그의 아내 팻시 볼링. 전킨과 그의 아내 메리 레이번, 리니 데이비스 등 7명을 한꺼번에 파송했습니다. 그들은 1892년 7월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했습니다. ]

강화 섬에서 전도 강연을 하며
언어 적응 훈련을 마친 레이놀즈는
1894년 3월 27일 군산에 도착.

말을 타고 전라도 지역 저잣거리와 장터를 돌며 전도했습니다.

동학농민군이 봉기하기 직전, 민심은 흉흉했지만
우리말을 유창하게 했던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곤 했는데
그것이 전주 서문교회 설립의 시초가 됐습니다.

언어에 재능이 있었던 만큼 한국어를 금 새 습득한 그는
신참 선교사임에도 성서번역 작업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성경 번역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용민 연구이사/한국기독교역사학회 : 당시 성서 번역 위원 중 레이놀즈처럼 히랍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잘하는 선교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신참이지만 성경 번역 작업에 동참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검토하는 수준으로 참여했는데 성서번역 위원으로써 성경을 전문적으로 번역할 것을 한국 선교사들이 요청했고 한국의 구약 성경은 레이놀즈가 거의 다 번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출신 피터스라는 사람이 번역한 시편마저도 레이놀즈가 다시 다 번역했습니다. 1910년도에 끝난 번역이 다시 개정작업에 들어갔는데 1930년까지 한 개정작업을 다 레이놀즈가 했습니다. ]

한국인 스스로 교회를 세워야 한다며
나누어진 분파를 대한예수교회로 통일하자고 주장했던 레이놀즈.

장로회 신학교에서 후학도 양성하며
한국 교회의 신학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용민 연구이사/한국기독교역사학회 :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30년 가까이 한국교회의 기본적인 신학적 흐름을 레이놀즈가 잡아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경험과 실제를 중시하는 학문적 전통을 강조하면서 교회가 살아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신학적 기초를 만드는데 공헌했습니다. 한국교회가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가 신학이 없다는 것인데 이들이 한국에 전하고자 했던 신학은 지금의 보수기독교나 진보기독교에서 대립되는 신학이 아니라 통합적이고도 교회와 사회를 하나로 이어주는 좋은 신학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

조선인들을 위해
45년을 생명책을 옮기는데 헌신한 레이놀즈 선교사.
그의 수고와 노력 덕분에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말씀위에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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