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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미혼모 향한 사랑으로 ‘애란원’을 낳은 반애란 선교사

724등록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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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그때,
여성인권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한국 최초의 미혼모자 생활시설인 ‘애란원'을
설립하고 이들을 위해 헌신한 고 반애란 선교사.

지난달 9일 그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미국 시카고에서 별세했는데요.

어제 오전 애란원에서
추모예배가 열렸습니다.

이주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60년 5월,
한국최초의 미혼모자 생활시설인 ‘애란원’을 세워
미혼모자 복지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 반애란 여사가
지난달 9일 미국 시카고에서 향년 94세로 별세했습니다.

어제 오전 ‘애란원’에서 추모예배가 별도로 드려졌습니다.

[추모사 대독: 여성으로서 여성을, 엄마로서 엄마를, 딸로서 딸을,
깊이 공감하셨기에 먼 이국땅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을 위해 헌신하신 것을 선택하고 삶으로 보여준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반애란 선교사의 사랑으로 자립을 할 수 있었던
한 미혼모가 그리운 마음을 담아
추모사를 대독한 후에는

애란원에서 미혼모들과 32년의 세월을 동거동락하다
지난 6월 은퇴한 한상순 전 원장이

지난달 11일 그녀의 장례식장에 참석했던
참관 보고가 이어갔습니다.

[한상순 전 원장 / 애란원: 반애란 여사의 장레식장 모습입니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소녀같은....]

반애란 여사의 추모영상을 보며
소외된 여성을 향한
반 여사의 사랑과 헌신을 보며
애도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1949년, 미국 북장로교 파송선교사인 남편 반피득 목사와 함께
한국에 들어온 반애란 여사.

6.25 전쟁 이 후
많은 소녀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 윤락가의 여성으로 전락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1960년. 윤락여성, 미혼모, 가출 청소녀는 돕는 ‘은혜원’을 세우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1977년,
반피득 목사의 정년퇴임으로
반 부부는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부부의 헌신과 사랑을 잊지 않고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습니다.

현재 애란원은
미혼모 생활시설 5곳과 대안학교,
센터 2곳을 운영하며
1년에 여성 500여 명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강영실 원장 / 애란원: 저희한테 오시는 분들에게 오시는 즉시 가족상담이 들어가고 진로 계획이 설정되고, 공동생활 가정이라든지 센터들을 통해서 이분들이 지역사회에 취업을 하고 주택을 마련할때까지 (도움을 드립니다.) ]

지금도 애란원은
과부와 고아를 돌보란 성경말씀을 평생에 걸쳐 실천한
반 여사의 뜻을 이어받아
사랑의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CGN투데이 이주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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