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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나'보다 '우리'를 생각했던 기독교 여성들

724등록 201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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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1호 의사, 1호 문학사 등...
1호란 수식어를 지닌 여성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써
공적인 책임을 다했던
1호 여성들을 일깨운 건 무엇이었을까요...

권지연 기자입니다.

리포팅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는 박에스더입니다.

박에스더의 삶이 바뀌기 시작한건
아펜젤러 선교사의 잡무를 보던 아버지,
김홍택의 권유로 이화학당에 들어가면서 부터였습니다.

서울의 보구여관과 평양의 기홀병원을 오가며
혼신의 힘을 다하며 환자를 돌보았던 박에스더.

10년간.. 매년 5천 명씩 환자를 진료한 그녀의 뒤에는
공부를 가르쳤던 메리스크랜튼
의사로써의 사명감을 몸소 일깨운 홀 선교사 부부.
<14세에 셔우드 선교사의 통역과 간호 보조로 일함>
급성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기까지
아내의 의대 공부 뒷바라지를 했던 남편 박유산이 있었습니다.

[하희정 박사 / 감리교신학대학교]

최초의 여성 문학사로
신여성의 대명사로 부리는 하란사.

인천 감리의 부인으로 평범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그녀를
이화학당에 보낸 건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습니다.

당시 기혼 여성을 받지 않던 이화학당이었지만
그녀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당시 교장을 맡고 있던
프라이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후 일본과 미국유학까지 다녀온 하란사는
귀국 후 상동교회 안에 있던 부인영어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1910년 9월 이화학당의 유일한 한국인 교사가 됩니다.

상동교회 진덕기 목사와 정동교회
손정도 목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1910년 후반부터 민족운동에도 뛰어듭니다.

[하희정 박사 / 감리교신학대학교]

최초란 수식어보다
헌신이 더 빛났던 초기 여성들.

기독교는 여성들의 공적인 영역을 일깨웠습니다.

[하희정 박사 / 감리교신학대학교]

몸 아픈 여성들을 위해 헌신하다
30대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박에스더.

독립운동을 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하란사.

처음이란 수식어를 달게 된
초기 기독교 여성들의 삶 뒤에는
‘나’보다 ‘우리’를 앞서 생각했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CGN투데이 권지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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