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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믿음의 흔적을 찾아…한국의 기독교 유적

252등록 201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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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이제는 특정한 계절에 국한되지 않고
주말을 껴서
해외나 국내 여행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성도라면
좀 더 의미 있는 경험을 위해
믿음의 흔적을 찾아가보면 어떨까요?

오늘은 가족과 함께 방문해 볼만한
기독교 유적들을 소개합니다.


◀리포트▶

[익산 두동교회 구본당]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두동길.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한국의 초기 개신교 건축물이 등장합니다.

'ㄱ' 자 평면의 한옥 교회로
함석지붕에 홑처마 우진각 형태.

두동교회는 한국의 전통 뿐 아니라
기독교 색채를 잘 아울러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9호,
한국 기독교 사적 제4호로 지정됐습니다.

당시 한국의 유교문화가 반영돼
'ㄱ'자 형태로
남녀가 따로 앉아
서로 볼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예배당이 당시 한국에서 시행된
핵심 선교 정책을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바로 한국의 토착성과 자율성을 강조한
'네비우스 선교정책' 입니다.

H.N.앨런, H.G.언더우드 등
앞서 1980년대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가
한국에 보낸 선교사들은
주로 해외 선교 경험이 없던
2~3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국인이나 선교부와
원활한 관계 등을 세우지 못해
갈등과 시행착오를 겪었는데요.

이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는
중국 체푸에서 활동 중이던
네비우스 선교사를 한국에 보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논문과 강연으로
이미 인정을 받았던 그는
2주간 서울에서 자신의 정책을 공유합니다.

그의 이름을 딴 네비우스 정책은
자진 전도, 자력 운영, 자주 치리를
기본 이념으로 내세웠습니다.

실제 갈 곳 없던 성도들이
난파된 선박에서 떠밀려온 소나무를 싼 값에 사들여
짓게 된 것이 현재 두동교회입니다.

'기역' 자 형태의 예배당은
이처럼 토착성과 자율성을 강조한 선교정책에 따라
개신교와 전통이 결합하면서 나타난
독특한 유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갑자기 일본 경찰이 올 것을 대비해 마련된
비밀 장소는 당시 성도들의 절박한 믿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후 교육관들이 차례로 지어진 두동교회는
본당과 함께 역사가 잘 보존돼
익산이 가진 4대 종교 흔적 밟기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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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승동교회

서울 한복판에도
한국의 기독교 역사와
믿음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있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높이 솟은 빌딩 숲 사이로
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면
3.1운동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승동교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쁜 도시에서 걸음을 멈춰
잠시 10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1919년 2월 20일.

이 교회의 지하에서는
당시 전국의 학생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3.1운동의 지침과 계획이 논의됐습니다.

조선총독부에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12인의 장서'를 과감히 제출하고 옥고를 치른
차상진 목사와
만세운동으로 투옥된 교인들.

승동교회는
'3.1운동'의 거점이었습니다.

교회는 1893년
미국 북장로회
사무엘 무어 선교사에 의해 시작됐는데요.

100여년 전 만해도
양반, 평민, 천민 등
계급이 따로 있던 한국.

사무엘 목사는 이에 맞서 평등을 외치며
양반과 평민이 평등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현재 교회 모습의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또 이 교회에서
대한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인
YWCA가 창립돼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도왔습니다.

교회에 마련된 역사관에서
이처럼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등
나라의 고난을 함께 지내온
승동교회의 역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기독교역사사적 1호로 지정된
승동교회.

100년이 지나도록
행동하며 신앙과 나라를 지킨 이 곳은
지금도 복음으로 성도들을 양육하며
믿음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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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경 이원영 목사의 생가

다시 한국의 남쪽으로 내려가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 가면
한옥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이 곳은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 손으로 태어난
이원영 목사의 생가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는
봉경 이원영 목사의 생가를
올해 한국기독교사적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는 선비 신분으로 태어나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권력과 재정을 마다하고
3.1만세 운동에 헌신했습니다.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헙하고 좁은 길을 걸었습니다.

장로교단이 시대의 흐름과 타협해
신사참배를 결의했던 때에도
출교 처분을 받아가면서 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했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목사로
당대에 큰 영향을 끼친 그의 생애는
비기독교인들에게도 감명을 주기 충분해
대통령표창, 건국훈장 등을 추서받기도 했는데요

봉경, 이원용 목사.
그가 살았던 자취와 향기가
현 세대에게도 남아
그의 하나님 사랑과 교회 사랑 정신이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랍니다.

CGN투데이 주영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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