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재형 대표 / 한국WEC국제선교회 C.T.스터드의 가정이 아주 부유한 집안이었어요. 영국의 아주 유명한 크리켓 운동선수였기도 하고. 부모님으로 받았던 지금으로 따지면 수십억이 되는 재산을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믿음으로 선교하기 시작했어요.
10년간 중국에서 선교했던 씨티 스터드는
건강 상의 문제로 1894년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1900년도에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6년간 인도 선교사로 재헌신합니다.
사역을 마치고 영국에 돌아온 씨티 스터드는 우연한 기회에 한 글귀를 보게 됩니다.
[인터뷰2] 김재형 대표 / 한국WEC국제선교회 그가 리버풀이라고 하는 북부에 있는 지역에 가서 팻말을 봐요. 팻말의 내용이 뭔가인가 하면 '식인종은 선교사를 원한다' 였고, 그 팻말을 보면서 '이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하나님이 이것들을 통해서 아프리카 어떤 역사를 가지고 계실까' 하는 고민을 시작 했죠.
1900년대 당시 영국에서 인식하는 아프리카는 노예, 금광, 생물학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씨티 스터드는 아프리카로 선교사들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중국과 인도에 헌신했던 그는 결국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53세라는 늦은 나이에 한 번 더 선교사로 재헌신합니다.
[인터뷰3] 김재형 대표 / 한국WEC국제선교회 그 당시 영국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영국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49세 50세 정도 되었다고 그래요. 53세에 모든 생애의 중요한 것들을 접고 아프리카 중앙으로 갑니다. 중앙아프리카 콩고로 가죠.
콩고로 나간 씨티 스터드는 지금의 국제WEC선교단체의 전신인 아프리카 심장 선교회 HAM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후방 지원 인원이 없어 그의 부인이 영국에 남아
선교사들을 발굴하고 파송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당시 인도 무역으로 성공한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씨티 스터드는
콩고로 나가기 전 모든 재산을 선교 단체와 사회단체에 기부했습니다.
당시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에게 영향을 받아 '믿음 선교'를 내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 선교'는 국제WEC선교단체의 정신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재형 대표 / 한국WEC국제선교회 WEC선교회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믿음 선교를 하는 단체로 인식을 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그러합니다. 믿음 선교가 여러 가지 것들로 해석될 수 있지만 (WEC선교회에서 말하는)믿음 선교는 모든 필요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우리의 필요들을 알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우리에게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역하는 것입니다.
단체 설립 후 선교회 이름이 여러번 바뀌면서
지금의 WEC선교회 명칭은 1982년에 정해집니다.
그 사이 WEC선교회 설립자 씨티 스터드는 1931년 71세의 나이로 콩고에서 소천합니다.
선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해 중앙아프리카에서 북부 아프리카로, 더 나아가 중동과 아시아로 사역을 확장합니다.
[인터뷰] 김재형 대표 / 한국WEC국제선교회 선교지 확장뿐만 아니라 국제 선교 단체로서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독일에도 본부가 생기고, 네덜란드 등 유럽을 중심으로 우선 각 나라 본부가 생기고, 영연방에 있던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미국으로까지 가서 (각 나라) 본부를 세우고 시작하게 됩니다.
현재 WEC선교회는 80여 개 국가의 100여 개 종족들에게 2,300여 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했습니다.
한국WEC선교회는 소속으로는 487명의 선교사들이 파송됐습니다.
선교사들은 미전도 종족이 집중된 10/40(십사십 창) 지역에 가장 많이 파송된 상태로,
교회 개척부터 신학교 운영, 전문인 사역, 선교사 자녀 케어 등 다방면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재형 대표 / 한국WEC국제선교회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과 중앙아시아와 아시아 지역에 있는 힌두, 무슬림 등 이러한 국가들에 집중을 하고 있죠. 믿음 선교라는 기치 아래 중요한 가치인 믿음, 거룩, 희생, 교제 네 가지 기둥을 가지고 저희들은 삶의 모범을 보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