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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리포트

40년 전의 국제 난민 '보트피플'

1120등록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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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다 건너 과거로 되돌아갑니다. 40년 전,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을 공격하면서 진로에 놓인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거나 피난을 시도하다가 죽기를 각오했습니다. 빈 청과 그의 가족들 역시 그랬습니다.

1975년 4월, 미군의 헬리콥터가 사이공의 대사관 직원들을 대피시켰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베트남 전쟁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정권은 처음에는 일상생활의 작은 부분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이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빈 청
"처음에는 그저 평화를 원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점차적으로 우리의 모든 소유물에 대한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우리 가족의 모든 소유를 잃는 지경에 이르렀고 우리의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당시 빈 청의 가족은 도정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메콩 델타 지역에서 가장 큰 회사였습니다. 베트콩은 지분을 요구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정부가 모든 것을 몰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청 가족의 기업은 사라졌습니다. 직장도 없고, 돌아갈 집도 없어진 청의 가족들은 그나마 남아있는 것을 모아서 떠났습니다. 당시에 빈은 3살이었습니다.

빈 청
"하룻밤 사이에 모든 걸 잃었습니다. 부모님은 남아있으면 열심히 일해도 공산주의자들에게 모두 빼앗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라를 떠나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셨습니다. 남아 있었다면 미래가 없었을 테니까요."

사이공의 함락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수백만 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천 명이 떠날 수 있을 때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쪽의 중국으로 향했지만 중국은 국경선을 폐쇄했습니다. 육로로 피난한 또 다른 이들은 서쪽을 향했습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와 라오스를 거쳐야 했습니다. 청의 가족에게 선택사항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바다를 통하는 길이었습니다. 가족들 중 누구도 보트를 타봤거나 바다를 본 적조차 없었습니다.

빈 청
"한 사람 당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아주 적었어요. 그게 전부였죠. 그래서 가진 모든 물건을 팔고 보트에 탔습니다. 바다로 나가 희망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기 직전에 빈의 어머니가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빈 청
"꿈 속에서 평소처럼 시장에 나가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갑자기 주변을 돌아보니 사람들이 전부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장 한가운데에 수염 난 남자가 서있었대요. 그 사람이 가리키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쓰러진 채로 그 사람이 어머니와 가족들을 가리켜 주기를 기도하며 간절히 바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를 가리켰고 모두 다 살아났다고 해요. 그 꿈을 꾸고 난 후, 어머니는 그 꿈을 심상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저 꿈이 아니었다고 생각할만한 그런 꿈이었던 거죠."

'베트남 보트피플'은 두 명 중 한 사람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들은 식량이나 필수품을 거의 갖추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난민 보트는 태국 해적들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됐습니다.

빈 청
"곧 부서질듯한 작은 보트에는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이 있었고 무기가 없었어요. 해적들에게 우리는 떠다니는 돈줄이었고 그들은 그걸 잘 알았습니다."

바다에서의 두 번째 날, 수평선 너머에 불길한 느낌의 배가 나타났습니다.

빈 청
"그들은 칼을 비롯해 무기를 휘두르며 뛰어들었어요. 귀걸이나 보석을 빼앗으면서 돈이 될만한 걸 요구했습니다. 약탈을 마친 그들은 왔을 때처럼 빠르게 떠났습니다."

난민들은 나라 없이 떠돌았습니다. 난민들이 망명을 요청하는 나라들이 지쳐갔고 지원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칭의 가족은 3일 만에 해변에 도착했지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빈 청
"마을 주민들이 해변에 난민 보트가 나타났다고 말레이시아 군대에 보고했어요.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군인들은 번갈아 가면서 남자들을 때렸습니다. 그리고 줄을 지어 걸어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난민들은 그렇게 했고 뜨거운 태양 아래 여러 날을 걸었습니다.

빈 청
"우리가 어떻게 될지 말해주지 않았어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무인 지대에 있던 거죠. 우리를 받아주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나라 없이 불확실한 상태가 됐습니다. 어머니는 혹독한 환경으로 유산하셨어요. 해변에 지낸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는 피를 흘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기절해서 거의 죽을 뻔 할 때까지 피를 흘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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