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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리포트

우크라이나 취재 중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기자

299등록 202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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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 중에 부상당하고, 생사를 오갔던 폭스 뉴스의 벤자민 홀 기자가 기적적으로 회복했습니다. 그의 믿음과 놀라운 회복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 * * * *

[인터뷰 #1]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며칠 전의 전투 현장입니다.
러시아군이 진격하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포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리포팅]
벤자민 홀 기자는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 등을 주로 다니며 종군 기자로 활동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됐고, 취재로 두각을 나타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2]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이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낙관적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리포팅]
그러나 2022년 3월 15일, 키이우 외곽 지역을 취재하던 홀 기자는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으면서 뉴스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인터뷰 #3]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우리는 속도를 줄이며 검문소로 갔어요.
버려진 검문소였죠.
//
차가 천천히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첫 번째 폭탄이 날아왔어요.
//
하늘에서 쌩쌩 소리를 내며 날아와서
우리 앞 30피트 지점에 떨어졌어요.
//
우리는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차를 후진해서 돌리라는 외침이 들렸어요.
//
하지만 몇 초가 지나자 두 번째 폭탄이 떨어졌고,
차 바로 옆에 떨어졌어요.
//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저는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
완전한 침묵의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그 어둠 속으로 저의 7살 난 딸 아너가 왔어요.
//
바로 앞에 와서, 무엇보다도 분명하게 말했어요.
'아빠, 그 차에서 나와야 해요.'
//
그리고 저의 눈이 떠졌습니다.
저는 빠르게 세상으로 돌아왔고, 차 문을 향해 나갈 길을 붙잡았죠.
//
제가 차에서 나오자마자 세 번째 폭탄이 날아와서
차에 명중했습니다.
//
그리고 저는 날아갔고, 잠시 의식이 없었습니다.

[리포팅]
의식을 되찾은 홀 기자는 자신이 입은 부상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4]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깨어나니 저는 바닥에 있었어요.
몸이 타고 있었고, 오른쪽 다리와 왼쪽 발이 없었어요.
//
힘이 거의 빠졌지만 불을 껐어요.
굴러서 불을 끄려고 했습니다.
//
아무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공격당한 걸 아무도 알 수 없었고,
//
핸드폰은 수신이 되지 않았어요.
그 순간은 기도해야 하는 때였습니다.
//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했어요.

[리포팅]
그때 우크라이나 특수 부대원이 탄 차량이 지나갔습니다.

[인터뷰 #5]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그는 처음엔 우리를 보지 못했는데
길을 잃고 다시 돌아왔어요.
//
그리고 얼마 후에 저는 키이우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깨어났습니다.
//
하지만 제가 구원받지 못할 걸 알았습니다.
도시 밖으로 나갈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
그런데 이 놀라운 구출 작전이 펼쳐졌고,
'Save Our Allies'가 저를 폴란드 총리의 기차에 태웠습니다.

[리포팅]
홀 기자는 오른쪽 다리, 왼쪽 발 외에 한쪽 눈을 잃었고, 손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오랜 친구인 피에르 자크르제우스키 영상 기자와 우크라이나인 사샤 쿠시노바 PD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간신히 생명의 끈을 붙잡은 그는 기차를 타고 10시간을 버텨야 했고, 국경을 넘어 폴란드로 가야 했습니다.

[인터뷰 #6]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우리는 바리케이드를 뚫고,
통행금지를 뚫었습니다.
//
제가 정말 다친 건지 아니면 러시아 테러 집단인지
확인하려고 저의 상처를 확인했어요.
//
제가 기도해야 하는
또 다른 것이었죠.
//
10시간이 지나고, 엄청난 고통 속에 폴란드 국경에 도착했을 때,
미군의 블랙호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 하늘로 떠올랐을 때, 살아남는 일은 끝나고,
회복이 시작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리포팅]
그의 회복의 여정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인터뷰 #7]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회복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물리 치료를 받고,
//
대부분의 날은 의사들을 만납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요.
//
저는 먼저 독일의 랜드스쿨로 보내졌습니다.
미국 밖에 있는 가장 큰 기지입니다.
//
이곳에 병원이 있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부상당한 이들이 치료를 받았던 곳입니다.
//
저와 비슷한 상처를 입은, 다발성 외상을 입은 부상자들이죠.

[리포팅]
그는 신간 'Saved'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 그리고 세 딸을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인터뷰 #8]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딸들이 바로 저를 보러 오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
아이들이 제가 그렇게 심하게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걸
보지 않길 바랐어요. 그게 저의 회복을 이끌었어요.
//
아이들이 저를 보러 오는 대신,
저는 가능한 한 빨리, 매일 할 수 있는 한 나아지려고 했어요.
//
그래서 매일 일어나면, 전날보다 더 많이 하는 게
저의 계획이었습니다.

[리포팅]
홀 기자는 사고 후 처음으로 세 딸을 만나던 날, 걱정과는 달리 진정한 기쁨을 맛보았다고 전했습니다.

[인터뷰 #9]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꽤 긴장했었어요. 저와 비슷한 사고를 당해서
사지가 절단된 베테랑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
자녀들이 처음 봤을 땐
많이 무서워했다고 말했어요.
//
하지만 제가 문으로 걸어들어갔을 때,
아이들 모두 저에게 뛰어와서 저를 붙잡았어요.
//
그리고 첫째는 떠나지 않으려고 했죠.
딸이 저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
'아빠가 돌아왔어, 아빠가 돌아왔어, 아빠가 돌아왔어.'라고 했어요.
우리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
그래서 열심히 했습니다.
아이들이 저를 구했고, 집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
그 순간은 완전한, 진정한 기쁨의 순간이었습니다.

[리포팅]
그의 아내는 헌신적으로 회복을 도왔습니다.

[인터뷰 #10]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그녀가 전부 다 돕고 있어요.
독일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
제가 그곳에 간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미안하다고요.
//
일어난 일이 아닌 앞으로의 일 때문에 그랬습니다.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는 걸 알았어요.
//
그녀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디에서 하든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리포팅]
한편 홀 기자는 회복 기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도를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11]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매일같이 편지들을 받습니다.
이메일에, 소셜 미디어에 메시지가 들어와요.
//
미국 전역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기도를 보내며 축복해 줍니다.
//
그리고 그 메시지들을 읽을 때마다
끝까지 해낼 또 다른 작은 힘을 얻었습니다.
//
여러 면에서, 저는 지금 하나님과 훨씬 가까워졌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느낍니다.

[리포팅]
그는 자신의 생존과 회복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음을 느낀다고 전했습니다.

[인터뷰 #12]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안다고 말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 놀라운 지원과, 기도, 친절 그리고 용기 덕분에
//
제가 구원받았다는 걸 압니다.
그 일부를 되돌려 줄 수 있다면, 옳은 일일 거예요.

[리포팅]
복귀를 앞두고 있는 홀 기자는 그동안의 경험을 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인터뷰 #13] 벤자민 홀 기자 / 폭스 뉴스
지금은 아니지만 다음 달에
몇 가지 일이 예정돼 있어요.
//
몇 가지 계획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 중인데
긍정적인 측면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
제가 만난 놀라운 사람들과 그들의 기도,
그리고 주변의 영웅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
처음으로 그런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리포팅]
벤자민 홀 기자는 하나님이 주신 두 번째 삶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데 쓰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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