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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리포트

3D 모델링으로 재현한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

101등록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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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로마가 가장 역사적인 인물을 기립니다.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로마 제국 전체에 퍼트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동상이 42피트 높이로 제작돼 카피톨리니 박물관(Capitoline Museum) 정원에 전시됐습니다. 서기 312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의뢰한 동상의 복제품으로 원본 작품을 3D 모델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기독교는 어떻게 해서 로마 제국을 점령하게 됐는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 * * * *

[리포팅]
잘 알려진 것처럼,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외딴 구석에서 소수의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3백 년 후에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됐습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전투에서 승리를 위해 기도하던 중에 ‘정복하라’는 문구가 적힌 십자가 환상을 봅니다. 그 환상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습니다. 한때 지상 최대의 강국이었던 로마는 4세기에 멸망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인터뷰 #1] 폴 마이어 박사
달리 보자면, 22명의 황제 가운데 20명이 암살당하는
끔찍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리포팅]
두 황제가 지배권을 두고 다퉜습니다. 브리타니아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로마의 막센티우스 황제였습니다. 제국은 전쟁과 가난 그리고 역사상 가장 잔혹한 기독교 박해로 피폐해졌습니다.
 
[인터뷰 #2] 폴 마이어 박사
크리스천은 압력을 받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믿음을 위해 당당하게 일어섭니다.
//
그리고 그 결과는 굉장히 극적이죠.
 
[리포팅]
로마 크리스천들은 곧 콘스탄티누스 황제라는 옹호자를 발견합니다.
 
[인터뷰 #3] 폴 마이어 박사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는 로마 제국을 기독교화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리포팅]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를 타도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막센티우스를 이교도이자 폭군이라고 불렀습니다. 때는 312년이었습니다.
 
[인터뷰 #4] 폴 마이어 박사
막센티우스는 모든 악의 화신 같았습니다.
그는 끔찍하고, 끔찍한 황제였습니다.
//
그는 마녀들과 주술사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았습니다.
//
그는 여러 가지 부정한 방법으로 미래를 점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
임신한 여성의 배를 가르고 태아의 간에서
내일의 단서를 확인했습니다. 끔찍합니다.
 
[리포팅]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유럽 전역에서 막센티우스의 세력과 싸워 물리쳤습니다. 10월 27일, 콘스탄티누스 군대는 로마를 침공할 만반의 태세를 갖췄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에서 9마일 떨어진 곳에 진을 쳤습니다. 그의 군대는 수적으로 4 대 1로 열세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이 들판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꾼 환상을 보았습니다. 정오 무렵, 콘스탄티누스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태양 위로 계시가 보였습니다. 그리스 문자인 카이(Chi)와 로(Rho)가 교차된 심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의 첫 두 글자 위에 '이것으로 정복하라'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날 밤, 그 이상한 계시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잠들어 있는데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나타나서 그 심벌을 군기로 사용하라고 지시하셨다'라고 전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콘스탄티누스는 방패에 그 심벌을 새기라고 군사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표식 아래 로마로 진군했습니다.
 
막센티우스는 테베레 강 건너편으로 콘스탄티누스에 맞설 군대를 보냈고, 자신은 로마에 남았습니다. 10월 28일은 막센티우스가 통치한지 6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서커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에서 경기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환호하는 대신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군중은 콘스탄티누스를 이길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막센티우스는 아폴로 신전으로 도망쳤고, '시빌라의 서(Sibylline Books)'라고 알려진 예언서를 찾아보다가 10월 28일이 언급된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그날 로마의 적이 멸망한다는 예언이었습니다. 이것이 콘스탄티누스의 죽음을 예언한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마음을 바꿔 군대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콘스탄티누스 군대와 테베레 강 사이에 갇혀 있었습니다. 로마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은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를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막센티우스는 자신이 콘스탄티누스 군대를 위해 세워놓은 함정에 빠졌습니다. 막센티우스는 로마로 향하는 모든 다리를 끊고, 밀비안 다리만 남겨놓았습니다. 밀비안 다리는 콘스탄티누스 군대의 무게에 무너지도록 설계된 임시 목조 다리였습니다. 대신 그의 군대가 그 덫에 걸렸습니다. 다리가 무너지면서 대부분의 군사들이 익사했고, 남은 자들은 포로가 됐습니다. 막센티우스는 강으로 뛰어들어서 익사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콘스탄티누스 군대는 막센티우스의 머리를 창 끝에 꽂아 들고 로마에 입성했습니다.

오늘날 콘스탄티누스는 첫 번째 크리스천 황제라고 알려져 있지만 진정성 있는 개종이었는지, 정치적 움직임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습니다.
 
[인터뷰 #5] 폴 마이어 박사
콘스탄티누스는 그렇게 해서
정치적 이익을 얻었을 수도 있습니다.
//
저는 왜 그가 전적인, 신실한 크리스천이거나
계산적인 정치인이어야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조금은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리포팅]
콘스탄티누스는 황제로서 로마 이교도 사제단의 수장으로 남아 있으며 그의 주화에는 로마의 태양신, 솔 인빅투스(Sol Invictus)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는 로마 태양의 날을 국가 휴일로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6] 폴 마이어 박사
콘스탄티누스가 제국 통치에 있어서는
혼합된 크리스천이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전환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교도를 포함한 모든 로마인의 황제입니다.'
//
'그러니 시간을 좀 주세요. 단계적으로 중단할 겁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리포팅]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그의 기독교에 대한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는  1년 만에 공동 황제와 관용 칙령을 발표합니다. 모든 종교가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박해받은 크리스천들로부터 압류한 재산을 반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인터뷰 #7] 폴 마이어 박사
정말 극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개종했을 때,
당시 로마 제국에 크리스천은 10%뿐이었습니다.
//
300년대 말에는 로마인의 95%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리포팅]
그리스도가 죽은 지 4백 년이 되지도 않아서 그의 제자들은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공동체가 됐습니다. 기독교는 이 표식과 함께 로마 제국을 점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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