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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으로 찢긴 가족, 11년만에 재회

715등록 201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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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지난 20년간, 반군 단체들이 중앙아프리카의 콩고를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습니다. 전쟁으로 5백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백만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최근, 존 제섭이 콩고에서 온 한 난민을 만나봤습니다. 갈가리 찢어졌던 그의 삶이 다시 회복됐습니다.

▶리포트◀
네네 레즈구자는 관리인으로서 청소 일이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동안, 그 자신의 삶이 엉망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가족을 위해 큰 꿈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으로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네네의 여정은 이곳 중서부의 목가적인 콜롬비아, 미주리로 그를 데려왔습니다. 그의 고통스럽고 극적인 이야기는 7천 마일이 떨어진 곳에서 시작됩니다. 최악의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입니다. 전쟁으로 찢긴 콩고에서 나고 자란 네네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마을이 습격당했을 때 납치됐습니다. 그는 인생 대부분을 도망치면서 살았습니다. 그의 세상이 뒤집어지던 날은 이웃 국가에서 일어났던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유혈 사태를 그린 <호텔 르완다>에 잘 묘사됩니다. 여느 날의 밤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총소리가 그의 가족을 깨웠습니다. 마을이 공격당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남자들이 먼저 공격당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이 살아남길 바란 네네는 가족들을 그가 도망치는 반대 방향으로 가게 했습니다.

네네 레즈구자 / 콩고 난민
“’지금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건 하나님뿐이야, 어서 뛰어’라고 말했어요.”

다음날 마을에 돌아온 그는 비참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마을의 모든 집이 완전히 불탔고 그의 아내과 아이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네네 레즈구자 / 콩고 난민
“다시는 가족들을 볼 수 없게 됐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남겨진 그는 또 다른 공격을 두려워하며 떠나기로 했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네네 레즈구자 / 콩고 난민
“하나님, 우리가 기독교인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하지만 제 마음속에 욥의 인생을 생각해보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저의 상황이 전혀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두 달 후, 그는 안전한 항구를 찾아 콩고에서 르완다, 우간다 그리고 케냐까지 천 마일을 여행했습니다. 여행하는 내내 하나님을 신뢰하며 낯선 이의 도움에 의지했습니다. 케냐에서 지낸 지 3년 만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난민 자격으로 미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네네 레즈구자 / 콩고 난민
“저는 행복했지만, ‘하나님 우리 가족이 아직 살아있다면 함께 미국으로 갔을 텐데요’라고 말했죠.”

네네는 미주리 중부에 새로운 집을 마련했습니다. 그가 가져간 단 한 가지는 습격 당시 지니고 탈출했던 성경책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그의 아내, 프랜신의 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그의 가슴 아픈 과거를 뒤로하며 콩고에서 농사를 짓고, 가르치며, 설교했던 것처럼 네네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프랜신의 생사가 확실해질 때까지 재혼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네네 레즈구자 / 콩고 난민
“우리 가족이 살아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어요. 하지만 현실을 보면 나 자신을 속이는 거로 생각했죠. 그래도 저의 영은 강하게 느끼고 있었어요”

네네는 관리인으로 일하지만 그는 진실한 소명은 목사입니다. 그는 이곳 제1침례교회의 흑인 예배를 담당합니다. 그의 성도들, 동료 그리고 친구들이 가족이 되어 서로 지지합니다.

샬럿 개디
“만나자마자 우리의 마음이 통했어요. 그리고 아들 같은 존재가 됐죠.”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샬럿 개디입니다. 네네가 자동차 대출금을 신청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을 때 만났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공통점이 돼 하나로 묶였습니다. 네네는 그녀를 ‘마마 샬럿’으로 그녀의 남편을 ‘파파 스티브’라고 부릅니다. 그는 더는 자신이 고아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온 지 1년이 지나 네네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의 아내와 세 자녀 모두가 케냐에 살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4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전쟁과 서류 작업, 비행기 취소 등 갖가지 이유로 연기되며 견뎌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허가가 떨어지고 마마 샬럿은 즉각 행동에 나섰습니다. 이민과 관련된 사항을 도우며 가족이 살기에 충분한 공간의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기부자들과 성도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가족에게 새집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샬럿 개디
“비어 있는 아파트에서 시작해 일주일 만에 테니스 운동화부터 은그릇 세트까지 모든 것을 마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하셨습니다.”

지난 여름, 11년간의 헤어짐 끝에, 네네는 가족과 재회했습니다. 부부가 그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네네 레즈구자 / 콩고 난민
“가족들이 문으로 들어오는 순간 정말 감정이 복받쳤습니다. 공항에서 울었어요.”

자신들의 경험은 기적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프랜신 레즈구자
“저는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했었어요. 마을이 공격당하면 남자들이 죽거나 끌려가서 나중에 시신이 발견되는 걸 항상 봐왔으니까요. 과거를 돌아보면,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뿐입니다.”

네네 레즈구자 / 콩고 난민
“다시 결혼한 것 같아요.”

프랜신에게 남편을 처음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질문했습니다.

프랜신 레즈구자
“그를 콩고에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더 젊었었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었네요.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어요.”

네네 레즈구자 / 콩고 난민
“전 아직 젊어요.”

그녀를 봤을 때, 예전과 같던가요? 아니면 더 아름다워졌던가요?

네네 레즈구자 / 콩고 난민
“아름다워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네네와 그의 가족은 지난 몇 달간, 서로 알아갔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갓난아기였던 아이들은 모두 10대가 됐고 미국생활에 적응 중입니다. 그리고 마을 습격 당시 고아가 돼 그의 아내가 입양한 아이를 알아 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프랜신과 네네는 올해 봄에 다섯 번째 아이를 맞게 됩니다. 남자아이로 이스라엘이라고 이름 지을 예정입니다.

프랜신 레즈구자
“기쁨의 아이입니다.”

네네 레즈구자
“저에게는 선물과 같은 일입니다.”

네네는 그의 수입만으로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정부에 갚아야 할 가족의 비행기 값 8천 달러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감사하며 달라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한편,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샬럿 개디
“이 부부는 하나님의 신실함과 약속의 거룩함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충실했고 서로에게 충실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적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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