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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죽을 때 까지 한국을 사랑한 故 존 윌슨 선교사

1101등록 20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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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1900년대 초
한국에 의료 선교사로 파송된
로버트 윌슨 선교사.
이후 자녀들까지 한국 선교사가 되어
한국을 위한 사역을 꾸준히 이어왔는데요.

로버트 윌슨 선교사의 아들인 존 윌슨 선교사가 지난달
아흔아홉의 나이에 소천 했습니다.

나고 자란 조선 땅을 고향으로 생각했던
그의 삶을 되짚어 봅니다.
보도에 이주희 기잡니다.


▶리포팅◀

1916년 광주에서 태어난 존 윌슨 선교사는
의료선교사였던 아버지 로버트 윌슨 선교사를 쫓아
한국 선교의 피를 물려받은 선교삽니다.

평양외국인학교 고등학교를 졸업 후
미국으로 돌아가 소아과 의사가 된 뒤
다시 한국을 찾기까지,
늘 ‘나는 반 한국인이다’라는 마음이 있었을 만큼
그의 한국 사랑은 아버지에 못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故 존 윌슨 선교사

지난달 4일 만 99세의 나이로 소천한
존 윌슨 선교사가 남긴 선교의 유산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그의 장례예배를 찾아온 친척들 뿐 아니라
마을주민들과 교인들까지...
존 윌슨 선교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를 유쾌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인터뷰]

전주예수병원 전임자가
갑작스럽게 심장병으로 순교한 뒤
1968년 다시 한국을 찾을 때에도
존 윌슨 선교사는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느 곳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3년 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는 안락한 생활을 추구 하는 대신
탄광촌 마을로 찾아가 의료사역을 펼쳤습니다.

1996년에는
온실 프로젝트를 진행해
북한 식량지원사업에 일조하기도 하며
한국 사랑을 이어왔습니다.

나날이 증가하는 한국선교사 숫자를 바라보는 일이
그에게는 한없는 자랑이었습니다.

[인터뷰] 故 존 윌슨 선교사

숨질 때까지 일평생 현역 선교사로 살았던
존 윌슨 선교사.

그가 남긴 믿음의 유업을 이제, 우리가 이어가야겠습니다.

CGN투데이 이주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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