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에 영국 선교사들이 인도에 갔을 때 인도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을 뭐라고 불렀냐면 지주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렇게 불렀을까요? 선교사들이 본국에 있을 때는 자기가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돈을 본국에서 가져가도 그곳에 큰 땅을 사고, 집을 짓고, 담을 두르고, 경비를 두고 그렇게 산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아~ 그 동네에 사는 지주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변발 속에 숨은 뜻은?
제가 속해있는 선교단체가 OMF라고 하는 단체인데요. 저희 단체를 시작한 분이 허드슨 테일러라고 하는 선교사입니다.
이분이 1854년에 중국에 선교사로 갔어요. 그 당시는 대부분 서양 선교사들이 서양 옷을 입고 사역을 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전혀 그런 복장에 익숙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허드슨 테일러가 그렇게 양복을 입고 어느 마을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거리니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복음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중에 어떤 남자가 아주 열심히 앉아서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전하는 복음을 끝까지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가버렸는데 이 남자가 허드슨 테일러에게 다가와서 "선생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상상을 하시겠지만 허드슨 테일러의 마음에는 아마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이야, 오늘 한 명이 아마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나보다."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가 대답했습니다. "네, 질문해주십시오."
그래서 이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 질문한 게 아니고 허드슨 테일러가 입고 있었던 양복 뒤에 와가지고 양복 뒤에 있는 단추를 만졌습니다. 그 당시는 제가 입고 있는 양복 같은 양복 뒤에 단추가 2개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저를 보시면 알겠지만 소매 단추가 있죠? 여러분 이 단추를 왜 달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추는 무슨 용도가 있어서 달고 있는데 아니고 그냥 패션으로 달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 당시 영국 사람들도 양복의 뒤쪽에 단추를 2개 달고 다녔어요. 그냥 패션이었어요. 이런 패션을 모르는 중국 사람은 그게 너무 궁금했던 거예요.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에게 와서 그 단추를 가리키면서 "선생님, 이 단추는 뭐에 쓰는 건가요?" 이렇게 물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허드슨 테일러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복음에 관심 있던 게 아니라 이 영국 사람이 입고 있었던 양복에 달린 단추에 대한 생각만 계속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사건은 허드슨 테일러에게 너무나 쇼킹한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허드슨테일러는 그 후부터 '아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 안 되고 중국 사람처럼 옷을 입고 복음을 전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입는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런데 머리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서양식에다가 중국 복장을 하고 다니니깐 너무 안 어울리는 거예요.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는 청나라 사람들이 하고 있었던 것처럼 머리를 길러가지고 댕기처럼 따고 앞은 미는 변발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허드슨 테일러가 자신 있게 자신이 변발을 하고 다니면 중국 사람들이 중국 사람처럼 봐줄 것이다 생각했는데 저자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전부다 웃는 거예요. 왜 그런가 봤더니 그 중국 사람들은 머리가 검정색이니깐 검정 댕기만 왔다 갔다 하는 그곳에 노란 댕기를 단 사람 한 명이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그게 더 재밌죠.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가 염색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가면 사람들은 선교사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본국에서 익숙한 그런 복장, 머리 모습, 이런 거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선교사들이 만약에 자기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훨씬 더 현지인들이 집중하게 하려면 자기가 현지인처럼 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얘기하면 '동일시'라고 얘기합니다. 선교사들은 현지에 들어갔을 때 언제나 그 사람들과 같아지는 것만이 복음을 전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 오랜 역사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단지 문화나 복식에 대한 것만은 아니고 (동일시의 경제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굉장히 많은 경우에 우리가 가는 선교지는 한국 보다 경제적으로 여력이 못한 나라에 갈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우리를 굉장히 부자나, 여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는 선교지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같아지려고 노력하는가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만약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른 기대를 할 수 있습니다. '아~ 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유익을 주려는 사람들인가 보다.' , '아~ 이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교회 건물을 지어주려고 온 사람들인가 보다.' , '이 사람들은 우리 목사님 유학 보내려고 하는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사람들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