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CGN 투데이

바로가기
월드 리포트

美 노스다코다 주, 전쟁 난민들 따뜻하게 환영

107등록 2023-12-05
  • 페이스북
  • 트위터
  • BAND

CGN 투데이

#total
  • 키워드
    검색어 입력 폼
  • 방송일
    방송년도 및 방송월 선택 폼
[앵커]
아프가니스탄과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들이 미국 노스다코타 주에서 새로운 터전을 찾았습니다. 지역 사회는 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며 받아들였습니다.

* * * * *

[리포팅]
2021년 8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있던 병력을 철수한 결과는 혼란이었습니다. 미군 13명과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170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조력자들을 탈레반이 통치하는 적대 국가에 좌초시켰습니다. 조력자들 가운데 하나인 압둘은 노스다코타주 파고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군의 통역사였던 그의 첫 번째 카불 탈출 시도는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1] 압둘 아프가니스탄 난민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그냥 집에 있어. 밖으로 나가지 마.'
//
'이웃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내가 어디에서 일하고,
누구와 일하는지 아니까.'
//
우리는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우리의 생명이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리포팅]
결국 미군이 그를 위해 다른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찾아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남으면 그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2] 압둘 아프가니스탄 난민
매일같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탈레반이나 정부가 현재 아프가니스탄 군대,
특히 특공대나 특수 부대원을 찾아낼 때마다 죽인다고 합니다.
//
저나 저의 가족에게 같은 일을 할 수 있어요.

[리포팅]
불행하게도 그의 가족은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3] 압둘 아프가니스탄 난민
사실 저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거나 안아주지도 못했어요.
//
가족처럼 제가 사랑하거나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는 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리포팅]
압둘은 중동에서 몇 주간 머물다가 결국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노스다코타 주가 가장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4] 압둘 아프가니스탄 난민
이곳 공항에 왔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겨울이었어요. 사방에 눈이었죠.
//
나와있는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노스다코타주 파고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리포팅]
루터교 국제 이민 및 난민 지원기구(The Lutheran Immigration and Refugee Service)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인터뷰 #5] 단 하나허 / 루터교 국제 이민 및 난민 지원기구
2021년에 첫 번째로 도착한
아프가니스탄 가족을 기억합니다.
//
먼저 일정 기간 동안 이곳에 머물고 있던 남편이
가족을 마중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다섯 명이었어요.
//
상당한 시간 동안 떨어져 있던 그와 그의 아내가 포옹할 때,
저와 저의 동료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
우리 직원 하나는 돌아서서 저를 쿡 찌르더니
이게 바로 우리가 일하는 이유라고 말했어요.

[리포팅]
하나허는 2021년부터 국제 이민 및 난민 지원기구의 노스다코타주 사무소 설립을 도왔습니다. 그 이후, 5백여 명의 난민들을 도왔습니다. 하나허는 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지역 사회 전반적으로 난민들을 환영한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6] 단 하나허 / 루터교 국제 이민 및 난민 지원기구
우리 지역사회의 넘치는 지원과 사랑에
정말 감사합니다.
//
비방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습니다.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이런 문제에 대해 사고 과정이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리포팅]
노스다코타 주를 집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난민들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세르기 리스트라텐코와 그의 아내 나탈리아, 딸 키라는 우크라이나 카르키우에서 살았습니다.

[인터뷰 #7] 세르기 리스트라텐코 우크라이나 난민
탱크들과 차들이 불에 타고 있는 걸 봤어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
우리 군대가 많은 사람들을 탈출시켰습니다.

[리포팅]
리스트라텐코 가족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으로 피난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고, 나탈리아와 키라는 미국행을 결정했습니다. 세르기는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남았습니다. 그는 한때 아내와 딸을 다시 보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인터뷰 #8] 세르기 리스트라텐코 우크라이나 난민
카르키우에 갔을 때, 러시아 군대가
거의 매일 로켓을 발사했습니다.
//
제가 카르키우에 있는 반 년 동안 매일 계속됐습니다.
당연히 가족을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리포팅]
7개월 후, 세르기는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친구가 노스다코타 주의 파고 지역을 추천했고, 우크라이나처럼 추운 날씨를 선호한 리스트라텐코 가족은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가족을 다시 만나게 돼 기뻤지만 고국을 떠나는 것은 씁쓸했습니다.

[인터뷰 #9] 세르기 리스트라텐코 우크라이나 난민
저의 부모님을, 어머니, 아버지, 형제 그리고 조카들을 떠나왔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있어요.

[리포팅]
미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4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과 10만 여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자국에서 발생한 큰 사건 이후 미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압둘과 세르기 두 사람 모두 고국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인터뷰 #10] 압둘 아프가니스탄 난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국제 사회가 탈레반을 압박해 학교와 대학을 다시 열고, 소녀들과 여성들이
학교에 다니며 계속해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 #11] 세르기 리스트라텐코 우크라이나 난민
우리는 안전한 곳에 있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땅을 지키고 있는 용감한 전사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리포팅]
노스다코타 주는 난민들에게 안전한 집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